Client: SAMUSO
Type: making & managing bookshop
Date: October, 2008 – February, 2010
Identity design: Jin Jung

2008년 10월 아트선재센터 1층 로비에 문을 연 더 북스는 그 동안 독립출판계의 플랫폼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일반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소소하게 만들어지는 책이나 팜플렛, 진(zine)들을 팔고 있다는 소리이다. 이러한 출판물들은 작가나 기획자들이 자신의 활동을 지속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제도와 자본의 범위 밖에서 활동하는,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여러 작인들(agents)은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고 지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출판을 선택한다. 그리고 더 북스는 서점 시스템 안에서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출판물보다 그 외부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에 더욱 관심을 가져왔다. 피에르 마셔레이(Pierre Macherey)는 사회 내부의 말할 수 없는 자들에게 접근하는 행위를 ‘침묵을 측정하기 measuring silence’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에는 말할 수 없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다. 이러한 영역 안에서 우리는 또렷하거나 명확하지 않은 웅얼거림과 소음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독립출판은 사실 이러한 웅얼거림과 소음에 대한 기록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더 북스는 이러한 영역의 지도를 그리기 위한 하나의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사실 더 북스가 지향하는 것은 잠재적인 것들을 위한 장소, 그 다양한 힘들이 서로 교차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소이다.

이번 플랫폼은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 공백 안에서 벌어지는 일시적 사건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 근본적(radical)인 영향을 미쳐왔던 여러 정황들이 변화하면서 우리는 그 공백이 개방되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더 북스 인 기무사’ 프로젝트는 이동가능하고 어디나 설치 가능한 더 북스의 모듈화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데올로기적 가상성이 만들고 지속시켜온 도시 속 공백(hollow) 안에서 그 장소가 쌓아놓고 있는 기억들과 대화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독립출판을 제도와의 갈등이나 반사회성으로 환원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 대신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도시 속 공백 안에 동시대성이 기입될 때 야기될 수 있는 효과이다. 더 북스가 만드는 웅얼거림과 소음은 동시대적이다. 우리가 동시대성을 본성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의 협상 과정으로 파악하는 한에서 독립출판은 동시대적일 수 밖에 없다. 더 북스가 담지하고 있는 동시대성과 기무사가 가지고 있는 두터운 기억의 층이 서로 충돌할때, 우리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동시대 문화적 조건 안에서 침묵을 측정하는 행위 만큼 기무사 안에서 우리는 과거의 기억과 동시대 소음을 중첩시키며 그 효과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상상력과는 별개로 더 북스에 대해 말하자면 이곳은 책을 파는 서점이다. 더 북스 안에 들어있는 책들을 통해 관람객은 자신만의 동시대성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더 북스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 (임경용)

* 이 텍스트는 플랫폼 2009 전시의 일환으로 쓰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