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로노피디아 - 작가미상의 자료들을 엮음
저자: 레자 네가레스타니
옮긴이: 윤원화
미디어버스 발행
2021년 4월 27일 발행
디자인: 워크룸
ISBN: 979-11-90434-14-0 (93100)
125x210mm / 400 페이지
값 20,000원
책 소개
“중동은 지각 능력이 있는 존재자다. 그것은 살아 있다!"
중동은 왜 전쟁이 끊이지 않는가? 인류는 왜 파국적 전망 앞에서도 석유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인간을 구원해야 할 종교가 왜 죽음을 퍼뜨리는 데 앞장서는가? 『사이클로노피디아』는 모순으로 가득 찬 21세기 초반의 세계를 중동이라는 어두운 구멍으로 빨려 드는 공포스러운 소용돌이로 그려내는 기이한 책이다.
이란 출신의 철학자 레자 네가레스타니는 인터넷이 연결된 현대 중동에서 출발하여 고고학자, 지하드 전사, 석유 밀수꾼, 미국 군인, 이단적인 종교 지도자, 고대 신의 시체, 지구와 태양, 외계의 사냥꾼이 등장하는 사변적 악몽을 펼쳐 보인다.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허무는 강박적이면서도 허풍스러운 글쓰기로 『사이클로노피디아』는 2009년 <아트포럼>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란의 재야 고고학자 하미드 파르사니 박사는 고대 페르시아의 역사에 숨겨진 신성모독적인 악의 근원을 탐구하다가 수수께끼처럼 실종된다.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적힌 박사의 노트는 그가 석유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면서 미쳐갔음을 보여준다.
한편 인터넷에서 알게 된 익명의 남성을 만나러 이스탄불에 온 미국인 여성은 접선에 실패하고, 그 대신 호텔 방에서 정체불명의 원고를 발견한다. 그녀는 알쏭달쏭한 실마리를 추적해 보지만 더 많은 설정 구멍들을 맞닥뜨리고 애초에 그 남자가 실존 인물이었는지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 테러와의 전쟁이 고조되면서 미국은 석유로 충만한 고대의 비밀스러운 주술에 휘말린다. 마치 전쟁 자체가 전쟁기계들을 먹고 사는 또 하나의 기계로서 도시를 무너뜨려 사막을 확장하고 검은 석유의 심장으로 침략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특별히 한국어 판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철학자 파비오 지로니와 레자 네가레스타니의 대담이 수록되어 있다. 이 대담은 『사이클로노피디아』라는 흥미진진한 사고 실험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이자 이후 저자의 지적 여정을 따라잡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차례
1. 인코그니툼 학테누스: 나는 어떻게 『사이클로노피디아』의 원고를 발견했는가 - 크리스틴 앨번슨
2. 박테리아 고고학: 지하세계, 하층토, 이종(異) 화학적 내부자
3. 발굴: 유물과 악마적 입자
4. 군단: 전쟁기계, 포식자, 해충
5. 지구행성적 반란: 건조함의 경주장, 태양 폭풍, 지구-태양의 축
6. 지도에 없는 지역들: 촉매적 공간들
7. 다중정치: 개방성과 반란을 위한 공모와 분열 전략
8. 용어 해설
9. 한국어판 부록
10. 역자 해설: 석유와 악마 사이의 문학 - 윤원화
11. 세계를 설계하기, 정신을 세공하기: 레자 네가레스타니와의 대화 - 파비오 지로니
추천사
비할 바 없는 책. 장르의 법칙을 뛰어넘는 공포소설, 묵시론적 신학, 석유에 대한 철학이 이종교배하여 새롭고 불가피한 책을 낳았다.
― 차이나 미에빌, 『바스라그 연대기』 저자
네가레스타니를 읽는 것은 살바도르 달리의 안내에 따라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것과 같다.
― 그레이엄 하먼, 『네트워크의 군주: 브뤼노 라투르와 객체지향 철학』 저자
이 탁월하고 흥분되는 책은 중동의 표층적 영토를 가로질러 지하의 심연으로 진입하는 범죄과학적 여정으로 당신을 안내한다. 지구는 살아 있는 인공물로 생산되어 유목적인 전쟁의 전술들, 극단적인 고고학적 실천, 석유 채취의 논리에 의해 내장이 뽑히고 텅 비워진다. 레자 네가레스타니는 철저하게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여 종교, 지질학, 전쟁 방식들 간의 관계를 재개념화면서 동시대 중동 정치의 지반 자체를 철학적으로 역지반화한다.
― 에얄 와이즈먼, 포렌식 아키텍처 디렉터
참으로 보기 드문 책. 역사, 지리학, 언어에 대한 신성한 선입견들을 감히 거꾸로 뒤집어서 살아 있는 가마솥에 넣고 펄펄 끓이니 관념들과 공간들이 유동적으로 운동하는 생명체로 변모하여 상상력과 경이로움으로 다시 숨쉬기 시작한다. 레자 네가레스타니의 이 훌륭한 소설은 우리를 언어 이전의 그리고 역사 이후의 시간으로 초대한다. 이른바 ‘지식’에 관한 완전히 독창적인 인식과 성찰이 아름답고 폭발적으로 탄생하는 묵시론적인 역작이다.
― E. 엘리어스 메리지, 「잉태」, 「뱀파이어의 그림자」 감독
레자 네가레스타니의 『사이클로노피디아』를 읽는 것은 풍부하고 기이하며 아주 강렬한 경험이다. 그는 석유의 지하적 미스테리에서 H. P. 러브크래프트의 섬뜩한 소설로, 고대 이슬람의 (그리고 이슬람 이전의) 지혜에서 근대 이후 비대칭적인 전쟁의 무시무시한 현실로 도약하면서 21세기 전지구적 문화의 숨겨진 전사(前史)를 파헤친다.
― 스티븐 샤비로, 『사물들의 우주: 사변적 실재론에 관하여』 저자
네가레스타니의 『사이클로노피디아』는 지구 전체를 지옥으로 향하는 탄소 순환의 피드백 루프에 묶어 놓은 고대 석유화학적 음모론의 주술적 모체를 정교하게 구성한다.
― 존 커산스, 『언데드의 반란: 아이티, 공포, 좀비 콤플렉스』 저자
서구 독자들은 이 작품으로 ‘난도질당해서 쩍 벌어지는’ 각별히 분열증적인 상태를 기대해도 좋다. 괴기할 정도로 환원적이고 폭력적이고 웃기면서도 도발적인 논문을 생각해 보라. 네가레스타니와 이슬람의 관계는 바타이유와 마르크스주의의 관계와 같다. ... 네가레스타니를 읽어라, 그리고 경배하라.
― 닉 랜드 ,『시간복잡성: 상하이의 시간을 관통하는 무질서한 루프들』 저자
인간의 합리적 사고능력이 점점 한계를 보이는 지금, 합리적 사고능력 자체를 급진적으로 재설정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까? 『사이클로노피디아』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훌륭한 음모론적 교양서이자 H. P. 러브크래프트의 충실한 독자들에게는 이름 없는 존재들의 이름과 위치가 기록된 '네크로노미콘'이 될 것이다.
― 류한길, 음악가
불경스러움과 심원함이 하나가 되는 책. 이 책을 처음 접하고 표토층에서 지구 내부로 이어지는 포터블 홀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고대 중동의 신과 괴물들, 사막의 전쟁기계, 전설과 추론, 석유와 자본주의, 지정학과 지질학, 지구행성적 정치와 태양의 패권 등의 재료들을 뒤섞고 접합시킨 이 책은 편집증적일 만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날카로운 철학적 사변으로 가득했다. 그에 속수무책으로 잠겨 들었고, 온전히 이해하고 소유하고 싶어 안달이 났으며, 이윽고 이 책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의 일부를 형성해 버렸다. 드디어 번역본을 통해, 두고두고 펼쳐 읽을 그 세계—지구 내부와 행성의 역사 곳곳에 둥지를 튼 구멍들 속으로 다시 한 번 들어갈 수 있어 기쁘다.
― 김아영, 현대미술가,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들』 공동 저자
이론적 소설이라는 말로 다 설명이 안 되는 『사이클로노피디아』는 추리소설이나 비법서처럼 짜릿하면서도 엄청난 지적 흥분을 일으킨다. 파르사니라는 가상의 인물과 그의 사유, 저술을 인용하는 이 사변 소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유의 판들이 만들어내는 창발성과 그 이면의 다공성 구조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텍스트다. 무엇보다 중동의 지정학에 어두운 한 독자로서, 이 책은 내게 서로 침투하고 들끓는 힘으로 작동하는 사막 군사주의, 종교, 신화, 역사의 매혹을 열어 보여주었다. 픽션 아닌 픽션으로 짜여진 이야기 더미들이 개미굴처럼 뒤얽힌 『사이클로노피디아』의 지하 세계는 중동뿐 아니라, 지구 전체를 꿈틀거리는 다중정치의 복합체로 새롭게 마주하게 한다.
― 이진실, 미술평론가, 아그라파 소사이어티 멤버
저자 소개
레자 네가레스타니
철학자. 저서로 『지능과 정신』, 『외부적인 것을 유괴하기』, 『크로노시스』(공저) 등이 있다. 현재 NCRP(New Centre for Research & Practice)의 비판철학 프로그램 디렉터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역자 소개
윤원화
시각문화 연구자. 저서로 『그림 창문 거울: 미술 전시장의 사진들』,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등이 있으며, 역서로 『기록시스템 1800/1900』, 『광학적 미디어』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석유는 절대적 광기로 자본을 중독시키는 행성적 전염병으로서, 선진 문명의 기술적 특이성으로 가동되는 경제 시스템 내부로 확산된다. 자율성을 지닌 지구생명적 공모자인 석유의 자취를 따라가 보면 자본주의는 인간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행성적 규모의 불가피성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여기서 자본주의는 심지어 인간이 출현하기도 전에 자신의 숙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60-61쪽, 박테리아 고고학 - 지하세계, 하층토, 이종화학적 내부자들)
“구멍난 공간, 또는 더 정확히 말해서 (완전성의 타락을 함축하는) 구멍난 ( )체 복합체는 지구와 같은 고체에서 특정한 유형의 전복을 촉발하고 가속화한다. 그것이 견고한 모체 내부에 펼쳐 놓는 구멍들은 표면과 깊이 사이에서 진동하는 모호한 존재자들로, 구멍을 뚫는 행위와 그 치명적인 다공성은 모체의 단합성과 완전성을 근본적으로 변질시킨다. 벌레 먹은 구멍은 고체의 견고함과 그것을 에워싼 표면의 정합성을 침해한다.”
(82쪽, 박테리아 고고학 - 지하세계, 하층토, 이종화학적 내부자들)
“쥐들이 달릴 때는 그들이 망가뜨리는 표면들과 그들 자신이 동시에 증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리스토파네스와 바킬리데스는 새들이 흐름(‘케이스타이’)을 위한 무제한적 열광의 공간인 ‘카오스’를 가로질러 날아간다고 노래했지만, 아무도 그 새들이 대체 어떤 종류인지 묻지 않았다. 날개 없는 것? 박제된 것? 금속 재질의 것? 머리가 잘린 것? 주머니칼로 눈이 도려진 것? ... 아니, 그들은 쥐들이다. 수천 수백만의 쥐떼다.”
(95-96쪽, 박테리아 고고학 - 지하세계, 하층토, 이종화학적 내부자들)
“‘은닉된 글쓰기’는 중동 구성체들의 구멍난 건축 및 창발의 모델에 상응한다. 실제로 은닉된 글쓰기는 구멍난 ( )체 복합체와 공모 관계에 있는 모델이다. 그것은 설정 구멍들을 통해 이야기 속으로 읽어 들어가는 접근을 제안한다. 서사적 짜임과 건전한 구조가 있는 텍스트가 그 배열에 순응하는 규율과 절차에 따른 읽기와 쓰기를 요구하듯이, 구멍난 구조, 타락한 구성체, 설정 구멍을 읽고 쓰려면 그에 걸맞은 방법론이 필요하다.”
(106-107쪽, 박테리아 고고학 - 지하세계, 하층토, 이종화학적 내부자들)
“전쟁은 확실히 충돌하는 전쟁기계들의 산물이 아니다. 전쟁은 자율적인 비생명을 가지고 전쟁기계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증식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쟁기계들은 이처럼 가학적인 전쟁의 음모론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전쟁의 비생명에 참여하는 이론적, 실용적 원칙으로서 악에 맞서는 악의 축을 설계했다. 이 축은 전쟁기계들의 규제와 전술적 역동성이 아니라 전쟁의 전략적 판에 상응하는 군사 기술들로 이루어졌다.”
(131쪽, 발굴 - 유물과 악마적 입자)
“중동의 서사와 서사시는 본질적으로 ‘먼지투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 중동에서는 영적인 여행, 정신을 해방하는 무아지경, 초자연적 여정, 탐사와 도보 여행, 심지어 정치적 집회나 목적이 모호한 신비한 여정조차 강과 바다보다 먼지 자욱한 사막에서 펼쳐집니다. 문명은 바다에 잠기는 대신 사막에 묻히지요. 배들은 사해에서나 발견되고, 신성한 존재들은 먼지를 들이마시며 세계들을 불에 그슬립니다. 이렇게 만사를 먼지로 쌓아 올리는 것은 중동의 맥락에서 (비록 사변적일지라도) 완전히 현실적인 접근이에요. 먼지는 나쁜 업보에 감염된 우리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145쪽, 발굴 - 유물과 악마적 입자)
“인간의 방어기제는 이 행성에서 가장 일관된 존재자다. 그것은 자체적으로 증식하는 편집증이 있어서 모든 접촉을 잠재적 침략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식별한다. 이 같은 편집증적 일관성이 ... 자율성을 획득하면, 그것은 가차없는 분열증으로 변모하여 외부적인 것 또는 이종첩자의 위협에 수동적으로 자신을 개방한다. 인간 중심적 보안체계는 미증유의 질병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로, 외부의 침략에 맞서는 시스템의 일관된 저항과 그에 대응하여 일관되게 확대되는 외부의 침략 사이에서 출현한다.”
(186쪽, 군단 - 전쟁기계, 포식자, 해충)
“총알은 완벽한 시민이다. 이라크의 다국적군은 총알을 ‘반짝이’ 또는 ‘스타 시민’이라고 부른다. 웨스트는 미군 부대들이 도시 공간에 원래 거주하던 시민들을 쫓아내고 그 빈자리를 총알로 채우는 순간 이 새로운 시민들의 철저한 이질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본다. 총알의 궤적들과 그 흠잡을 데 없는 집단적 비행은 도시의 지형과 윤곽선에 완전히 동조하면서 도시를 재설계한다. 그에 따라 도시는 다공성 해면동물이나 부석처럼 벌레 먹은 경계성으로 침식되어 구멍난 ( )체 복합체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210-211쪽, 군단 - 전쟁기계, 포식자, 해충)
“히드라글리프 또는 중동 자음 알파벳의 용 문자는 그 자체로 야만적 음악의 음표다. 팔라비어, 히브리어, 아랍어 문자나 사마리아어 알파벳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것들이 어떤 뒤얽힘 또는 더 거대한 고리(모든 괴물들의 어머니)에 대한 분해도를 그려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문자로 글을 쓰는 것은 고대의 뱀 또는 용 숭배에 심취하는 것과 같다. 중동의 자음 알파벳 즉 히드라글리프는 그 자체로 휘감기고 칭칭 감긴 역동적 복잡성의 뒤얽힘을 형성한다.”
(248-249쪽, 지구행성적 반란 - 건조함의 경주장, 태양 폭풍, 지구-태양의 축)
“화학(연금술)은 부패와 함께 시작한다. 부패라는 진창의 행위자 앞에 벌거벗겨지면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이라는 것은, 가스를 내뿜는 부패물이나 다름없지 않아?’ ... 그 질문은 악취 나는 공기를 통해 유독한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부패에 저항하는 것은 헛된 동시에 비옥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부패에 저항할 때의 비옥함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 질문 속에 공포의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다.”
(278쪽, 지도에 없는 지역들 - 촉매적 공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