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d Future 유즈드 퓨처 - 인용과 해제




Used Future는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 백화점 9층 문화홀에서 진행되었던 ‘2021 부산아트북페어’의 일환으로 기획된 전시이다. 

일시: 2021년 10월 27일 ~ 10월 31일
장소: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9층
기획: 구정연, 임경용
필자: 구정연, 심규선, 임경용
디자인: 신신
웹사이트: 민구홍 매뉴팩처링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 있다. 
—루이스 보르헤스

《유즈드 퓨처》는 헌책방에 발견된 두 권의 책에서 시작한다. 얼마 전 우리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1990년대에 출간된 미술 서적 몇 권을 구입했다. 그중 하나인 『20세기 미술의 시각』(1991)은 H. H. 애너슨이 쓴 『현대미술의 역사 1, 2』 한국어판에 대한 보완 작업으로 꾸며진 ‘도록집’이다. 이 책의 편저자인 이영철은 원서에서 제외되거나 미진하게 다뤄진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해 자신의 서문과 함께 453점의 원색 도판과 작품 목록, 20세기 서양미술사 연표로 구성된, 부록이 아닌 독립된 화집을 기획했다.

복잡다기한 현대미술의 흐름을 우리의 현재적 요구에 맞게 작품을 선별하여 시각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해주는 화집이 없어 현대미술을 눈 없이 공부하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단편적이거나 피상적인 글들에 의한 도식적인 파악으로는 사실상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오해를 낳기 쉽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H. H. 애너슨의 『 현대미술의 역사 』 에서 제외되거나 미진하게 다뤄진 부분들에 대한 보완 작업으로서 도록집을 꾸미게 되었다.
—이영철, 『 20세기 미술의 시각 』 서문에서

책을 상품이 아니라 어떤 계기나 담론적 결과물로 인식한다면 그것에 대한 비평적인 작업도 가능하다. 현대미술을 서술한다는 행위에 대한 개입의 결과물인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내용보다 출판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어떤 비평적 장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무엇이 그로 하여금 책에 대한 비평적 행위로 출판을 결심하게 했을까? 그러한 행위가 가진 급진적인 성격을 생각해보면 1990년대 초반 한국 예술출판 실천들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또 다른 책은 이영철의 책과 비슷한 판형과 두께에 327점의 도판과 10명의 글이 수록된 『포스트모던 미술과 비평』(1993)이다. 평론가 서성록은 ‘모더니즘 이후 출현한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을 어떻게 평가하고 수용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좀더 객관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에 상반된 견해를 취하는 학자들의 글을 모아 소개한다.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와 그 양상을 다룬 서성록의 글을 제외하면 힐튼 크레이머, 어빙 샌들러, 토니 고드프리, 핼 포스터, 위르겐 하버마스 등 해외 저명한 미술사학자와 평론가의 글이 수록된 비평 선집이다.
30년전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은 선집이라는 형식, 편집자 역할을 수행한 큐
레이터/평론가, 전시로서의 출판 등 미술과 출판의 관계를 둘러싼 최근의 이슈뿐만 아니라 미술의 역사와 담론을 생성하고 이를 확산하는 미술 출판의 고유 역할도 새삼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편집자로 분한 큐레이터와 평론가는 출판을 통해 그 시기의 미술현장을 기록하는 한편, 새로운 미술 담론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했을 것이다. 책을 이리저리 들여다볼수록, 2021년 우리 손에 잡히는 책과의 시각적 구조적 유사성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고, 우리가 경험하는 현재의 시간을 1990년대 시간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의 소규모 출판이나 예술 출판은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에서 출판물의 수가 급증하고 유통 경로가 다양화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책문화 생태계가 활기를 띠었다. 이 생태계는 전통적인 출판 주체인 출판사나 편집자뿐만 아니라 작가나 기획자, 공동체, 디자이너, 사진가 등 각 영역의 에이전트들이 서로 협력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지식 공동체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적 지도를 150여권의 책을 통해 엮어 보았다. 그리고 이들이 엮어내는 무의식적인 서사 안에서 1980년대 소집단 출판 운동, 일상과 출판, 에디토리얼과 큐레이토리얼, 작가가 만든 책, 출판 전시와 프로젝트, 지역 출판, 출판형식으로 중철, 도구로써 책 등 10여 개의 키워드를 추출하였다.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가진 책들의 잇닿음이 만들어내는 상상의 키워드들은 또 서로를 느슨하게 참고하고 연결하면서 어떤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즈드 퓨처》는 지금과 미래의 시간을 이해하고 이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자 소규모 출판 혹은 예술 출판에 대한 선형적 계보를 그려보는 작은 시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