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야망: 한국 동시대 페미니즘 미술의 시차들




발행: 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버스
지은이: 이진실
발행일: 2021년 12월 16일
크기 120 x190mm
페이지: 160
디자인: 조현열
편집: 신은주
ISBN 979-11-90434-23-2 (93600)
값 20,000원


책을 내면서

이진실의 《사랑과 야망: 한국 동시대 페미니즘 미술의 시차들》은 서울시립미술관과 SeMA-하나 평론상의 수상자가 동반자가 되어 만들어가는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간되었다.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는 비평의 몫에 대한 공공 미술기관의 책임감과 평론가들의 생명력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로, 평론가가 가지고 있는 비평적 문제의식을 장기적 연구로 분배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획이다.

2019년 SeMA-하나 평론상 수상자인 이진실은 본격적 연구에 돌입하기에 앞서, 2020년부터 미술관 약 6개월간 사전 연구 활동을 수행했고, 이를 기반으로 2년간 자신만의 담론적 독자성을 획득하기 위한 고구를 지속해 왔다. 2021년 출간된 《사랑과 야망: 한국 동시대 페미니즘 미술의 시차들》에는 그 노고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에서는 연구자가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 현대미술의 현장, 담론의 특이성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책의 제목 《사랑과 야망》은 1987년 한국에서 방영된 전설적인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다. 시청률 76%를 기록했던 이 전설적인 드라마는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이성애 가족의 이데올로기를 모든 가정에 전파하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여자의 사랑과 남자의 야망. ‘사랑과 야망’은 서로 다른 성별의 욕망을 대변하는 은유였다. 그러나 2000년대 여자들의 사랑과 야망은 분명 이 드라마의 거대한 전형을 거스른다.

이 책은 2015년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겉으로는 풍성했던 페미니즘 미술 전시들과 이슈에 대해서 한 단면이라도 정리해보려는 시도다. 페미니즘 열풍으로 여성 작가들의 작업이 대거 선보이고, 각 대학의 졸업 전시마다 여성을 키워드로 한 작업이 넘쳐나고, 국공립 미술관과 주요한 사립 미술관들에서 전설적인 ‘페미니스트 아트’가 걸렸다. 2015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이러한 현상 속에서 그간 페미니즘 미술은 무엇을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았으며, 무엇을 말하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진실은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 리부트’의 심연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를 질문함과 동시에 한국 동시대 페미니즘 미술이 갖고 있는 여러 시차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

책은 크게 두 섹션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세 차례의 라운드 테이블로 동시대 페미니스트 미술인들의 진단과 소회를 나눈 기록이다. 첫 번째 라운드 테이블은 선배 세대 페미니스트 큐레이터, 미술사학자, 미학자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태동이라 할 80년대 ‘여성미술’부터 한국이라는 지역성과 서구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만남, 민중운동과 서구 페미니즘의 만남을 우리는 어떻게 기록해오고 있는가를 듣는다. 두 번째는 2000년대 페미니즘 미술 실천의 핵심에 있었던 작가들과의 만남이다. 2015~6년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시기 전후로 페미니스트를 표방한 작가들이 느끼는 변화의 온도 차, 재현과 언어화에 대한 고민, 그리고 페미니스트 연대의 불/가능성에 대한 단상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세 번째로 열린 라운드 테이블은 2016년 이후 미술과 비평의 내부를 해부해보는 시간이다. 동시대 한국 페미니즘 미술에서 담론의 위치, 공론장의 위치는 어디인지, 대상화와 재현금지라는 도그마에 맞서 비평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미술 안에서 작동하는 남근적 욕망에 맞서 페미니즘적 글쓰기/비평의 정치성은 어떻게 모색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담겨있다.

마지막 글 <불온한 프리네를 위한 시론>은 이진실 평론가의 주제비평이다. 여성 욕망의 실천과 형상화를 사회적 안티테제에서 ‘퀴어한 부정성’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지, 또 이로써 시각예술 및 문화에서 등장하는 여성적 섹슈얼리티의 또 다른 비평적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지 질문해보는 글이다.

《사랑과 야망: 한국 동시대 페미니즘 미술의 시차들》은 평론가 이진실이 바로 지금 옆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후배, 동료 페미니스트 작가·기획자들‘과’ 함께 따지고 들고 포용하며 풀어낸 기록이다. 또한 이 작업은 언어적 결정화 이전의, 또는 그 결합 작용 사이의 불화와 연결을 대화를 통해 쉼없이 계속해 나가기 위한 일종의 준비 과정이다.



목차

004 … 사랑과 야망: 한국 동시대 페미니즘 미술의 시차들
012라운드 테이블
012 … #1 차이와 반복의 시간들: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어제와 오늘
- 김현주, 김홍희, 양효실
050 …  #2 메갈 이후, 미술에서 페미니즘을 말한다는 것
- 장파, 정은영, 흑표범
096 … #3 한국 페미니즘 미술비평의 난제들
- 김정현, 남웅, 유지원
135 … 불온한 프리네를 위한 시론


책 속에서

P.30
“예술과 정치에서 그러니까 ‘여성 예술’이라고 할까요? ‘여성 예술’이건 ‘여성주의 예술’이건, ‘여성적 예술’이건, 그 부분에서 예술은 거의 빠지고 페미니즘만 남은 느낌이랄까요? 사실은 이율배반적인 이야기인데, 미학 전공인 제게 예술, 미적 유희의 가치는 일종의 실존적 정체성인 거죠.”
(양효실, ‘#1 차이와 반복의 시간들: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어제와 오늘’)

P.47
“미술에서의 페미니즘이 잖아요. 그런데 이게 연착륙을 제대로 하려면, 미술뿐 아니라 영화, 연극 다른 분야의 페미니스트들하고 연대가 중요해요. 내가 경험하기로는 예술, 문화 분야보다 여성학이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그걸 깨야 돼요. 남성만큼 학문적인 권위를 중시하기도 하니까요. 미술이 다른 분야의 페미니스트들하고 어떤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는가, 그게 좀 중요한 것 같아요.”
(김홍희, ‘#1 차이와 반복의 시간들: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어제와 오늘’)

P.60
“여성작가의 전시를 연다는 것이 페미니즘 방법론이 가져온 큐레이토리얼이나 역사 읽기의 새로운 관점을 제 공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여성 비하적이고 혐오적인 관점을 양산할 뿐 이지는 않나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러니까 인식론의 구조나 성별의 규범적 이해 등을 넘어서지 못한 채, 여성을 계속해서 피해자라는 존재로 규정하 기 위해 여성작가의 전시가 열려야 한다면, 대체 언제 여성 작가의 주체성 과 고유한 형식적 도전들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어쨌든 여성 작가의 전시가 아예 열리지 않는 것에 비해서라면야 계속 열 리는 게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가요?.”
(정은영, ‘#2 메갈 이후, 미술에서 페미니즘을 말한다는 것’ )

P.73
“소위 ‘여성회화’로서 혹은 남성적 회화 표현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는 작업을 해나가며 증명하기 싫은데 증명하고, 굳이 언급하고 분석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왜냐면 아직 우리에겐 언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그것을 분석하기 위한 미술사적인 언어나 비평 언어가 훨씬 풍부해져야 한다 생각해요.”
(장파, ‘#2 메갈 이후, 미술에서 페미니즘을 말한다는 것’)

P.106
“다른 한편에서 목격하게 되는 것은 과거 페미니즘 미술로부터의 단절이에요. 최근 미술대학 졸업 전시에서 여성 작가의 치열한 고민들이 눈에 띄는데, 8, 90년대 페미니즘 미술 작업과 유사한 모티프나 소재가 자주 등장합니다. 오마주처럼 보이는 작업도 종종 있는데, 작가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내밀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설명할 때가 많아요. 물론 그렇겠지만 자신의 경험이 미술 작업이 될 때, 주요 상징물이나 매체가 갖고 있는 역사를 인지하지 못할 때 공회전의 함정이나 가장된 소외감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봅니다.”
(유지원, ‘#3 한국 페미니즘 미술비평의 난제들’)

P.120
“공정성이 갖는 함정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성비를 맞추고 구색을 갖췄으니 명분을 다했다는 판단이 드는 것일 텐데, 그런 조치가 명분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노력은 생략하기 쉽잖아요. 퀴어라는 소재 자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을 듯해요. 근래까지도 주요 갤러리나 미술관에서는 퀴어라는 키워드를 용기 내서 선택하는 느낌도 드는데요. 기관의 ‘용기’에 의의를 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작업들을 배치하는 데서 나아가 논의를 열어내야 하는데, 형식적 다양성의 틀거리로 곧장 가둬버려서 김이 새기도 하죠. 사회적 소수자나 논쟁의 키워드를 선택하고 섭외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진지하게 드러내도록 요구하고 심문하는 스텝이 중요한데 말이죠.” (남웅, ‘#3 한국 페미니즘 미술비평의 난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