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박사의 반향실: 레게, 기술 그리고 디아스포라 과정
Dr. Satan’s Echo Chamber: reggae, technology and the diaspora process




발행: 미디어버스
지은이: 루이 추데-소케이
옮긴이: 강덕구
발행일: 2022년 3월 31일
크기: 104 x 160 mm
페이지: 168
디자인: 헤이조
ISBN: 979-11-90434-26-3 (92670)
가격: 10,000원


책 소개

이 책은 미국 보스턴 대학 영문학 교수인 루이 추데-소케이가 지난 1997년 자메이카 킹스톤의 웨스트 인디스대학 밥 말리 강좌 개설을 맞아 진행했던 강연 원고를 번역한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를 주로 연구하는 저자는 이 강연에서 카리브해 연안에서 시작된 덥과 레게부터 힙합 같은 북미대륙의 흑인음악을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동시에 아프로-퓨처리즘(미래주의)의 미적 성취를 바라볼 수 있는 비평적 관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아프로-퓨쳐리즘은 제국주의의 침탈로 인해 전세계로 펴져나간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문화적인 상상력을 판타지적이고 SF적인 세계관으로 확장한 것을 일컫는다.

터너상을 수상한 ‘오톨리스 그룹’의 코도 에슌은 『사탄 박사의 반향실』이 아프로-퓨처리즘을 확장시킨 기념비적인 에세이라고 상찬한다. 기존 흑인 음악 비평이 흑인의 신체적 본능의 부산물로 한정하며 리듬을 강조했다면, 이 글은 흑인 음악 비평을 테크놀로지의 잠재력을 활용하는 ‘과정’으로 확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리 스크래치 페리, 킹 터비 같은 덥 뮤직은 소리의 공명, 즉 ‘더빙’을 강조한다. 또한 힙합 프로듀서들은 기존 음악의 한 부분을 ‘컷 앤 페이스트(자르고 붙이는)’하는 방식을 통해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저자는 이처럼 흑인 음악이 음향 테크놀로지를 전유해 현대 대중음악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단순히 기술적인 변용이 아니라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경험과 그 반향이 만들어낸 여러 사건들을 함께 배치하며 아프리카의 디아스포라, 공동체, 종교, 흑인 음악, 음향 테크놀로지가 서로 공명하고 있음을 이 글을 통해 밝혀낸다.


저자 소개

루이 추데 소케이는 『The Last Darky』(2005)와 『The Sound of Culture』(2015)를 포함해 다수의 저작을 저술한 영향력 있는 작가이자 학자다. 미국 흑인 연구 학술지 『The Black Scholar』의 편집인이며 동시에 보스턴 대학의 영문학 교수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스터디스 디렉터이다. 2021년 2월 회고록 『Floating in A Most Peculiar Way』가 출간되었다.

역자 소개

강덕구
작가. 비평공유플랫폼 ‘콜리그’ 운영진. 영화이론과 영화사를 전공하고 영화평론가로 활동했다. 닉 랜드의 「멜트다운」, 로빈 맥케이의 「합성적 청취자」를 번역했고,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가속주의, 문화비평, 아마추어리즘에 관심을 갖고 있다.



책 속에서


P.9

여기서 나의 논평은 소리와 문화에 대한 전통적이고 유물론적인 논점에 대해독특한 관점을 취한다. 이는 흑인음악의 형식, 특히 레게를 바라보는(듣는) 것에 달려 있다. 식민주의 지식의 유산 중 하나는 그 지식이 가하는 임상적인 시선의 대상이었던 우리가 이러한 시선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점이다. 서구 인류학과 문화비평이 흑인 예술을 순전히 사회학적으로, 즉 어떤 응답 혹은 저항의 증거로서 바라보았던 지점이 존재한다. 레게 담론 역시 음악을 국가의 병폐(자메이카인 학자 브라이언 믹스가 말하는 “헤게모니적 소멸”)나 기초적인 수준의 문화비평(“인민의 목소리” 또는 “저항의 리듬”)을 진지하게 뛰어넘을 수 있다고 간주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클리셰에서 벗어나기 위해, 레게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만든 음악적 방법론으로 진지하게 취급할 것이다. 또한 복잡하고 포착하기도 어려운 레게 그 자체의 비판적 장치를 통해 바라볼 것이다. 나는 미학적인 측면에서 가사보다는 소리에 더 집중하여 음악에 접근하고 싶다.



P.41

리듬 앤 블루스가 어떻게 자메이카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역사는 잘 알려져 있다. ‘클레멘트 도드’ 같은 이주 노동자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도시 경험을 식민지 섬에 가져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체성, 정치학, 신앙에 대한 일종의 흑인 담론이 독립 이전 자메이카의 청각적 세계에서 미묘하게 번역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사실이 있다. 완전히 형성된 자메이카의 소리 문화가 시민권을 획득한 이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도시 세대와 마주칠 때 일어나는 재번역(반향의 반향)의 물질적 과정이다. 이 세대는 민권운동의 낙관주의가 투옥되고 추방되고 암살된 뒤에 새로운 공동체 의식을 찾는다.



P. 54

브레이크 비트는 틀림없이 힙합과 그에 수반되는 하위 문화 / 사회 운동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나는 자메이카의 “버저닝” 뿐만 아니라 투 데크 사운드 시스템의 턴테이블 저글링이 명백한 발전을 가져왔다고 주장하고, 또한 강조하고 싶다. (…) 브레이크의 황홀한 순간은 노래가 서사적 축적에서 벗어나 시간의 고립된 비 서사적 순간을 확장한 다음 연속성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이다. 그런 점에서 브레이크는 아프리카계 미국 음악의 블루 노트, 블루스의 비브라토와 유사하다. 이는 파열의 미학화와 그 고통의 연장이며, 아름다움에 의해 고통을 초월한다.



P.58

덥은 초창기 허크의 투 데크 턴테이블 비트 매칭과 마찬가지로 선형적인 내러티브(노래)를 급진적으로 변형시켜 독립적인 형태가 된다. 이는 은유적 층위의 상륙지 혹은 도착으로서 바로 그 개념인 “종결성”을 거부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는 리믹스의 개념이 탄생한 곳이고, 경제적 필요성에 의한 산물로서 오늘날까지 녹음된 사운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적, 미적 혁신을 제공하고 심원한 형이상학적 탐구가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자본주의의 매우 노골적인 형식이다. 노동을 최소화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한다. 프로듀서를 예술가로 만들고 완성된 상품을 다시 생산의 순환으로 도입하고, 소리에 관한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경험을 더욱 더 상품화한다.



P.70

흑인 디아스포라에 부단히 논리를 제공하는 문화간 교차적 영향과 반향을 형언하기란 어렵다. 그 속에서 의미가 원래 의도와는 완전히 무관한 소리나 상징, 사람들로부터 생겨난다는 점은 당황스러울 수 있다. (…) 누가 스카 음악이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반-흑인 신화에 의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전유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댄스홀의 배타적인 민족주의에 대응하는 나머지 세계가 스카, 덥, 루츠 레게를 발견하게 될 것인가? 누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레게라는 전통에서 보고 보아왔던 것에서 레게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러한 내용을 발화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