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시기술·속도·미술시장을 읽는 시간




저자: 김남시, 김진주, 서동진, 오경택, 이경민, 이승현, 이연숙, 이은수, 정강산, 홍이지
편집: 김진주
출판사: 미디어버스, 일민미술관
발행일: 2023년 5월 19일
크기: 105 x 150mm
페이지수: 416
디자인: 강문식
ISBN: 979-11-90434-45-4 (00600)
금액: 25,000원


책 소개
이 책은 2022년 8월 일민미술관에서 개최한 강연 프로그램 ‘인문학 썸머스쿨’의 기록이다. 지난 몇 년간 사회 전반의 변화를 가속한 팬데믹의 여파 속에서 동시대 미술은 디지털 기술, 미술시장의 성장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듯했다. ‘인문학 썸머스쿨’은 각각 두 명으로 구성된 인문사회분야 연구자 콜렉티브 다섯 팀을 초대해 열 번의 강연을 진행하며 기술, 속도, 미술시장을 주제로 느리고 첨예한 논의를 나누었다.
서동진과 정강산(MMCA)은 미술이 자본주의와 시장의 성장에 편승한 상황을 지적하며 그에 대한 저항으로서 미술의 역할을 모색했다. 김남시와 이승현(대안연구공동체)은 존재론에 관한 사유를 바탕으로 예술이 지니는 힘과 예술과 기술이 놓인 새로운 관계성을 논했다. 이경민과 홍이지(미팅룸)는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미술시장과 큐레이팅의 역사를 토대로 기술을 접목한 미술산업의 현황과 한계를 짚었다. 이은수와 오경택(디지털 인문학 연구 그룹)은 디지털 기술을 받아들인 인문학 연구 사례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학문과 새로운 방법론 간 연결의 질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김진주와 이연숙(아그라파 소사이어티)은 미술과 암호화폐라는 일종의 커뮤니티에서 상품과 자본이 작동하는 체계를 살폈다.
열 명의 연구자는 특히 과잉 유동성과 지정학적 갈등이 유발하는 가속화된 움직임을 두고 미술이 당면한 현실에 대해 각자의 관점을 소개했다. 이들이 열 가지 다른 시선으로 본 것, 이를테면 솟구치는 그래프의 지표, 규모 면에서 극대화된 미술시장, 미술품의 제작과 유통에 틈입한 디지털 기술은 동시대 미술이 지니는 가치를 무화하는 것이기도, 반대로 시장과 기술의 가치 있는 발전을 위한 미술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들의 사유를 이끄는 한 가지 공통된 관찰은 오늘날 미술이 빠른 가속을 거듭할 수록 우리가 미술에서 더욱 강렬한 ‘쇼크’만을 경험하기를 바란다는 점이었다. 영화 〈크래시(Crash)〉(1996)의 기계성욕자가 반복되는 충돌만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다고 믿듯 말이다.
〈크래시〉는 기계성욕자들의 기이한 성생활을 다룬다. 자동차 사고를 재연하는 연극의 연출가이자 스턴트 배우인 본은 도시를 누비며 잠재적 기계성욕자를 찾아 모은다. 그는 이들에게 충돌에서 비롯한 죽음과 죽음에서 기인한 충동의 희열을 이끌어 낸다. 육중한 자동차가 부딪히는 파괴적인 순간은 강력한 성적 에너지를 전달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 주인공은 자신의 계획대로 사고를 당한 애인에게 “다음 번엔 괜찮을 거야.”라고 말한다. 그의 대사는 충돌을 반복해 죽음에 가까운 더 강한 상처를 내겠다는 후일의 의지를 담고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구획지어지는 정상성의 세계에서 탈출하려는 이들은 점점 비정상이라는 변방의 세계에 잠식되어 간다. 기계를 탐욕하며 경험한 극도의 희열은 이제 한낱 낭만적인 단어와 미지근한 촉감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다. 움켜쥐고 있던 욕망을 해방시키고 충동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어 줄 부딪힘의 반복이 필요할 뿐. 충돌에 대한 믿음이 동시대 미술의 비관적인 미래를 예견하는 것일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실은 그 믿음이 낙관적인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의 전환도 가능할까? 이 책은 이처럼 동일한 관찰 아래 서로 다른 방향의 질문을 남긴 열 명의 사유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불확실성을 풀어보기 위한 실마리를 던진다. 본문은 각 콜렉티브가 공유하는 유사한 논점을 소개하되 이들의 구성과 무관하게 개별 연구자가 지닌 사유의 방향에 따라 3부로 나누어 엮었다. 1부는 자본화한 미술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을, 2부는 미술에서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고 있는 다양한 양상을 담았으며, 3부는 향유자의 관점에서 미술을 생산하고 감상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실었다. ‘열 시간으로 보기’는 강연에서 시각자료로 활용한 이미지를 도판으로 묶었고, 강연 순서가 아닌 이미지의 생성 순서에 따라 배열했다.

목차

들어가며 6
정강산 13  절대자본주의와 미술 — 심화된 매개 속 자유의 공간은?
서동진 49 쇼크의 미학 — 금융화 이후의 시각예술
이승현 91 가속주의와 육후이 기술철학의 쟁점
이경민 129 온라인 미술시장과 기술 변화
이은수 161 변속하기 — 디지털 인문학의 전망
오경택 195 디지털로 연결되는 미술사의 망(령)들
홍이지 231 디지털 큐레이팅과 게임사회
김남시 263 신실재론 예술론의 쟁점 — 그레이엄 하먼 대 마르쿠스 가브리엘
김진주 303 미술에서 상품이 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이연숙 339 믿음! 더 빨리, 더 많이 — 암호화폐 커뮤니티 내 믿음의 구조
열 시간을 보기 381

저자 소개

김남시
김남시는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문학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는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2019), 아비 바르부르크의 『뱀 의식』(2021),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예술의 힘』(2022) 등이 있다.

김진주
김진주는 미술작가이자 큐레이터, 시각예술문화 연구자, 팟캐스트 진행자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개인전 《지진계들》(합정지구, 2020)을 비롯해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아그라파 소사이어티의 일원으로 웹진 『세미나』를 공동기획 및 편집했으며, ‘세마 코랄’(SeMA Coral)의 외부 기획자로 창간 편집을 맡았다.

서동진
서동진은 문화평론가이며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각예술과 자본주의의 문화 및 경제에 대한 비판적 연구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2009), 『동시대 이후: 시간-경험-이미지』(2018) 등이 있다.

오경택
오경택은 카이스트의 디지털 헤리티지 랩 소속 연구원이다. UC버클리대학교 미술사학과 학사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석사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 박사 과정 중이다. 미술사 중심의 디지털 인문학 연구를 토대로 메타버스에서 가상공간과 가상박물관을 구현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경민
이경민은 비영리 연구단체 미팅룸의 미술시장 연구팀 디렉터로, 국내외 미술시장 주체의 움직임에 주목해 다양한 매체와 기관에 글을 기고하고 강의를 한다. ‘K-ARTMARKET’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2021 KAMA 컨퍼런스–미술시장과 온라인: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를 공동 기획했다. 공저로는 『셰어 미: 공유하는 미술, 반응하는 플랫폼』(2019)과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2021)가 있다.

이승현
이승현은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서 외래교수로 재직 중이다. 《토끼 방향 오브젝트》(덕수궁, 2020)에서 국제 세미나를 기획하는 등 다수의 전시 기획에 참여했으며, 국제미술사학회(CIHA) 등의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아트 캐피털리즘』(2021)이 있으며, 역서로는 클리포드 더글라스의 『사회신용』(2016)과 마틴 제이의 『눈의 폄하』(공역, 2019)가 있다.

이연숙
이연숙은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에 관한 글을 쓴다. 닉네임 ‘리타’로 활동하며, 비교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아그라파 소사이어티의 일원으로 웹진 『세미나』를 공동기획 및 편집했고, 프로젝트 OFF에서 페미니즘 강연과 비평을 공동기획했다. 2021년 SeMA–하나 평론상을 수상했다.

이은수
이은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학사와 동대학 서양고전학 협동과정 석사를 졸업했다. 스탠포드대학교 고전학과에서 서양고전학, 과학사, 디지털 인문학 관련 연구를 수행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정강산
정강산은 독립연구자로, 예술, 정치, 사회, 경제 등의 학제를 자본주의 생산양식과의 관계 하에서 맥락화하는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아트인컬쳐』, 『퍼블릭아트』, 『미술세계』, 『진보평론』, 『옵.신』 등에 글을 기고했다. 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연구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1세기에 가능한 유물론적 예술론을 다듬어 보려 한다.

홍이지
홍이지는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비영리 연구단체 미팅룸의 일원이며 디지털 매체와 창작 환경의 변화에 따른 인지 조건과 문화 현상을 연구한다. 《게임사회》(국립현대미술관, 2023), 《페터 바이벨》(국립현대미술관, 2022, ZKM 공동기획), 《모두의 박물관(MoE)》(경기도어린이박물관, 2020) 등을 기획했다. 공저로는 『셰어 미: 공유하는 미술, 반응하는 플랫폼』(2019),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2021)가 있다.

책 속에서

"아트테크의 실천은 2010년대 전반을 풍미했던 암호화폐나 부동산, 주식에 대한 투자 열풍의 연장에서 봐야 합니다. 희소한 것의 자산화란, 자본주의에서 너무나 당연하고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해 볼 수 있어요. 예술은 환원 불가능한 어떤 차이를 생산한다는 기능 때문에 특히 금융화된 자본주의 속에서는 어떤 의사 상품으로 소급되게 된다는 거예요. 비트코인의 원리와 똑같죠. 예술작품이 자본주의하에서는 투기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아도르노가 예술의 마지막 가능성으로 봤던 ‘비동일성을 생산하는 능력’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에서는 절대 지켜질 수 없는 원리죠."  (29페이지, 절대자본주의와 미술 — 심화된 매개 속 자유의 공간은?, 정강산)

"미적 경험과 인식이라는 것이 결합될 수 있으며, 또 있어야만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금 고루하게 말하자면, 미란 진이나 선과 함께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 결합에 실패하게 되면, 미적인 것만이 남는 이상한 일이 등장하게 되죠. 미적인 것은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귀여운 것으로 남게 돼요. 아름다운 건 없잖아요. 그 안에서 미적인 것과 인식적인 것, 미적인 것과 예를 들어서 선한 것이라고 불리고 있는 규범적인 것, 이런 것들 사이의 관계가 전락하게 되고 미학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순수한 미적 경험, 전율, 충격 이런 것들이 범람을 하게 됩니다. 전율과 충격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바로 그때 그 순간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전율과 충격, 그리고 미적 경험이라고 불리는 것만이 존재하게 될 때 그것이 갖고 있는 시간성의 차원이라는 것은 착란적인 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4페이지, 쇼크의 미학 — 금융화 이후의 시각예술, 서동진)

"육후이의 사유는 오늘날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술은 도대체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 가속주의가 던진 질문도 굉장히 근원적이죠. 예술의 정의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해요. 과학 예술, 시간 예술, 퍼포먼스, 다원 예술. 이런 것들이 과연 의도한 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다른 것을 하기로 해보자. 가속주의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육후이는 기후 위기라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그릴 때냐고 말해요.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기술이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예술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이던스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24페이지, 가속주의와 육후이 기술철학의 쟁점, 이승현)

"그동안 NFT는 시장 논리로만 이야기되었지, NFT 작품이 가진 작품성에 관한 논의는 많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가치라는 개념을 토대로 작품이라 불릴 만한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가 적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작가들도 예술작품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만한 작품의 당위성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작품이 나와야 디지털 아트나 콘텐츠에 관한 연구, 전시와 비평까지 이어지는 거니까요. 무엇보다 저는 ‘NFT 아트’라는 말이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적인 것은 결국 그 작품은 ‘디지털 아트’라는 점입니다. 디지털을 NFT로 민팅한 것일 뿐, 그냥 기술 아닌가요? 이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아트가 원본성을 보장받고 판매 가능성을 높이고, 이후에 메타버스 등을 통해 활용 가능성이 확장된다는 개념입니다." (154페이지, 온라인 미술시장과 기술 변화, 이경민)

"과거에 책을 복제한 필경사는 베끼다가 졸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실수한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APPLE이라고 따라 써야 하는데 APPEL이라고 쓴 사례가 남아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실수가 고전문헌학자에게는 너무 고마운 겁니다. 그 실수 하나 때문에 A사본이 B사본을 베꼈다는 사실이 확실해지기 때문이죠. 이를 토대로 사본 사이의 관계를 그려 보면서 부수적인 사본을 제외하고 중요한 사본을 중심으로 현상황에서 원본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아키타입(archetype)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읽을 수 있게 된 대부분의 고대 문학 작품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데요." (184페이지, 변속하기 — 디지털 인문학의 전망, 이은수)

"디지털 문화유산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문화유산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디지털 미술사는 조금 다른데요. 디지털 문화유산의 궁극적인 목적은 보존입니다. 건축, 사물, 무형문화재 등 우리가 보존해야 하는 문화재를 어떻게 디지털로 보존할까. 그런 질문을 합니다. 반면에 디지털 미술사는 보존보다 미술을 어떻게 향유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죠. 두 분야가 겹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물에 관한 연구인 동시에 사물의 가치를 매기는 방법을 다룬다는 점에서요." (216페이지, 디지털로 연결되는 미술사의 망(령)들, 오경택)

"과연 좋은 디지털 큐레이팅의 조건과 형태는 어떤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모두가 접속하기 쉬워야 한다. 작동하기 어렵지 않아야 한다.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공감을 얻어야 한다. 지속 가능해야 한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면 안 된다. 오래 남아야 하고, 아카이브를 할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미술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죠. 그리고 디지털 큐레이팅, 온라인 전시 기획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은 한계가 없다는 겁니다. 작품 제작을 의뢰할 때 현실에서는 공간의 제약이 있지만, 온라인 공간은 끝도 없어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디지털 큐레이팅은 아까 보여드렸던 검열 없는 도서관처럼 무언가 다른 방식의, 합당한 목적성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257페이지, 디지털 큐레이팅과 게임사회, 홍이지)

"미적 경험이 예술작품 내부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라는 건, 미적 경험을 하는 나의 정신이 나의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에 포섭되어 버렸다는 것이죠. 가브리엘은 이를 예술이 자신의 실현을 위해 감상자의 정신을 숙주로 삼는다고도 표현해요. 이쯤되면 예술은 자율적이기만 한 정도가 아니라 절대 정신에 상응하는 지위를 갖게 되죠. 인간의 역사란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절대 정신의 자기 운동의 결과라고 보는 헤겔이나 존재하는 모든 걸 예술작품으로 여기는 셸링 등 독일 관념론 철학의 계보가 느껴지죠." (301페이지, 신실재론 예술론의 쟁점 — 그레이엄 하먼 대 마르쿠스 가브리엘, 김남시)

"선언은 주체를 만드는 가장 고전적인 방식이자 예술과도 친연적인 방식입니다. 이미 선언은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반복되어 나타났죠. 비교문학에서 연구한 것을 토대로 예술가로서 일반적인 선언들의 공통성을 말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수행적으로 발화하고 있다는 건데요. 수행성은 진실됐고 언제나 사실에 근거한다기보다는 예술의 차원에서 어떤 연극적인 효과와 결부되어 있어요. 이런 것들은 예술에서의 선언, 예술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장들이 지닌 특성이기도 하죠. 힘을 가지고 있는 말일지라도 예술의 의미장 속에서는 그것의 진위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두 번째로는 역사적 주체로서의 인식이 있다는 겁니다. 아방가르드 선언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 내에서의 역사적 선언도 마찬가지죠. 항상 과거 시대와 결별하려고 하니까요." (325페이지, 미술에서 상품이 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김진주)

"다른 사람이 볼 때는 하나도 안 웃기는데 친구들끼리는 통하는 이상한 농담들 있잖아요. 이런 농담들은 하나의 작은 닫힌 우주를 이루면서 전에 없던 특수한 관계망, 의미망의 가능성을 보존합니다. 자본주의의 관점에서는 무가치하지만, 우리 안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형성해 버린 것들이 바로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공통의 후렴, 공통의 리듬이 아닐까요. 이처럼 우정은 스스로를 재특이화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베라르디가 강조하는 시의 역할과 가치 역시 우정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371페이지, 믿음! 더 빨리, 더 많이 — 암호화폐 커뮤니티 내 믿음의 구조, 이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