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하는 저급들 - 퀴어 부정성과 시각문화

SeMA 



이연숙 지음
미디어버스 발행
헤이조 디자인
2023년 12월 15일 발간 | 120×190 | 무선 제본 | 152면 |
ISBN 979–11–90434–55–3 (03600)
18,000원

페미니즘과 퀴어 예술, 하위문화에서 발견되는 소수자의 저항적 형식에 관심을 두고 새로운 담론 세계를 축성하고 있는 평론가 이연숙의 첫 책 『진격하는 저급들』이 출간되었다. 이연숙은 하나금융그룹이 후원하는 제4회 SeMA-하나 평론상의 수상자인바, 특전으로 주어지는 연구 및 출판 지원 사업인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로 이 책을 묶었다. 서울시립미술관(SeMA)이 구축한 국공립미술관 최초의 미술 분야 평론가 지원 시스템으로서 동시대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빛나는 비평의 성좌를 만들어가고 있는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총서의 세 번째 책이기도 하다.

시각문화의 영토를 분방하게 오가며 지금 발발하고 있는 문제들과 언제나 긴장감 있게 겨루고 있는 이연숙. ‘퀴어’라고 말하면 당연한 수식처럼 따라붙는 죽음과 자기파괴, 혐오와 수치심, 분노와 우울 같은 단어들 앞에서 우리는 자주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그는 머뭇거리면서도 확실히 기세가 좋다. 말하면 말할수록 너무 사적이거나 하찮은 투정이 되어버려서 우습도록 비장해지고야 마는 ‘퀴어한 삶’ ‘퀴어한 미적 양식’ ‘퀴어한 예술’을 비평한다는 것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무엇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중요한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결국 실패하리라는 낭패감”을 미리 안겨주지만, 이연숙의 목표야말로 퀴어한 삶에서 서로 경합하고 있는 바로 그 부정성, 저급한 것들의 역량을 동시대 (시각)문화예술 속에서 탐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체에 내장된 동력, 리듬, 통찰, 지성, 정념, 아름다움, 감수성과 ‘미친 맛’”(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을 가진 그의 비평은 유난한 집중력과 풍부한 해석을 선보이며 저급한 것들이 얼마든지 기세 좋을 수 있는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가로지르다(quer)’가 어원인 ‘퀴어(queer)’에 내재된 근원적 힘, 즉 ‘자기 자신을 초과하려는 움직임’을 발견하는 일, 그것을 위해 평론가는 시각문화 속에서 온갖 저급한 것들을 꺼내 일단 앞으로 진격할 수 있도록 미덕을 발견하고 등을 두드려준다.


죽음 자기파괴 혐오 수치 분노 우울 실패…
삶에서 경합하는 저급한 것들을
‘생리적인 반응으로’ 노출할 수밖에 없는 이의 목소리

『진격하는 저급들』은 총 여덟 편의 글로 구성되었다.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시립미술관 웹진 『코랄』에 2023년 4월부터 8월까지 연재한 일곱 편의 글과 2022년 9월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한 라운드테이블 ‘여성 퀴어 작가의 콜렉티브’(야광 콜렉티브, 홍지영, 이연숙 참여) 녹취록이 바탕이 되었다.

이 책의 프롤로그이자 모든 수록 글을 감싸는 ‘들어가며: 젠더문제’는 죽음, 자기파괴, 혐오, 수치, 분노, 우울, 실패 등 퀴어한 삶 속에서 경합하는 저급한 것들이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탐사하겠다는 목표를 더듬거리며 말한다. 독자들은 이 문체를 접할 때 그것 역시 이 글의 견고한 형식이자 전략임을 간파해야 한다.

이하 1장 ‘슬픈 퀴어 초상’에서는 미셸 푸코, 래드클리프 홀, 오드리 월런의 자기서술을 모아 ‘슬픈 퀴어 아카이브’를 제안한다. 조각가 조이솝의 ‘눈물 셀피’는 이 아카이브의 소장품이자 그 정치적, 미학적 실천 가능성을 예증하는 사례로서 ‘슬픈 퀴어 이론’의 등장을 강렬하게 암시한다.

2장 ‘단식 광대는 왜 춤추는가’에서는 인셀들의 영웅으로 전락한 ‘조커’를 둘러싼 도덕적 판단을 잠시 중단하고, 그가 유일하게 애쓰고 있는 행위인 단식과 타락, 기괴한 춤으로 표현된 몸 재현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지도 않으며 오직 춤만 추는 몸, ‘퀴어’를 유비하는 몸이 무엇을 부정하고 있는지, 어떻게 자신만을 위한 쾌락을 생산하는지 재고할 것을 요구한다.

3장 ‘뉴플 스케치’에서 저자는 과거에 클럽의 도어퍼슨(doorperson)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지금은 사라진 레즈비언 클럽의 풍경을 스케치하고 인류학적 탐구를 시도한다. 그 탐구의 이름은 ‘레즈비언 분류학’으로, 레즈비언들 사이에서는 너무나 익숙하고 진부한 분류이지만 그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분류다. 만취해 춤추는 팸, 체격 좋은 부치, 아무 데나 추파를 던지는 나르시시스트 등 클럽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 전형적이고 과잉 성애화된 인물들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날 레즈비언 전용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를 묻는다.

4장 ‘사이버펑크 혹은 살아남기의 장르’는 넷플릭스 시리즈〈사이버펑크: 엣지러너〉의 간략한 작품론이면서, 스타일적 매너리즘에 빠진 사이퍼펑크라는 장르를 향한 총체적 피드백이기도 하다. 이 장르가 갖고 있던 본연의 대항적 에너지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심문하는 날카로운 시선은 퀴어 예술 전반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다.

5장 ‘한심하고 쓸모없는 트위터 중독자들’은 며칠간 트위터(오늘날의 X)가 다운되어 서비스 종료를 예감했던 긴박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트위터 종말을 앞두고 한심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곤 했던 인터넷 공간 속 ‘트페미들의 키배’ ‘헛소리’ ‘쓰레기 정보’ ‘시간 낭비’ 등과 이것들에 심취해 있던 트위터 중독자들의 참된 역량을 주장하는 이 글은, 하루빨리 디지털 중독에서 빠져나와 진짜 현실 속에서 삶의 능력을 회복하라고 종용하는 뇌과학과 심리학 베스트셀러들의 대척점에 소중하게 서 있다.

6장 ‘레즈비언 황무지’에서는 (여성) 성소수자-퀴어 시각 예술이 ‘덜’ 보인다거나 ‘안’ 보인다는 세간의 평가를 재고한다. 이런 비가시성은 그러한 예술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하는데, 이 막다른 자리에서 그 비가시성을 차라리 (여성) 성소수자-퀴어 시각 예술의 존재 조건으로 다시 생각해보자는 반전의 제안이 돋보인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은 대담으로 구성되었다. 라운드테이블 ‘레즈비언은 왜 구린가’에서는 ‘레즈비언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탐문하며 그곳에 자리했던 청중의 의견을 포함해 여러 의견을 취합하고 심화하는 방식으로 레즈비언 미학의 특수성을 쌓아올린다. 수다와 넋두리, 열정과 회한이 섞여 현장감 있게 읽힌다. 이로써 『진격하는 저급들』을 이루는 말들에는 끝내 마침표가 붙지만, 그 역량을 체감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실패와 우정을 위한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도 전한다.



저자 소개 

이연숙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에 관한 글을 쓴다. 닉네임 ‘리타’로도 활동한다. 페미니즘과 퀴어 예술, 그리고 하위문화에서 발견되는 소수자 문화의 저항적 형식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비평을 지속하려 한다.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Agrafa Society)’의 일원으로 웹진 『세미나』를 공동 기획·편집했고, 프로젝트 ‘OFF’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즘 강연과 비평을 공동 기획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hotleve를 운영한다. 2015 크리틱엠 만화평론 우수상, 2021 SeMA–하나 평론상을 수상했다.

차례 
들어가며: ‘젠더 문제’

1장 슬픈 퀴어 초상
2장 단식 광대는 왜 춤추는가
3장 뉴플 스케치
4장 문제는 디자인이다
5장 한심하고 쓸모없는 트위터 중독자들
6장 레즈비언 황무지
7장 라운드테이블 “레즈비언 미술은 왜 구린가”
감사의 말

2023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에필로그



책 속에서 

“부정적 나르시시즘, 그것이야말로 영원히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고.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할, 끝내 자기 자신을 파괴할 부정적 나르시시즘의 말 없는 자매들인 우울, 수치, 불안과 같은 감정들은 애당초 슬픈 소녀들의 몫으로 지상에 남겨진 것이라고. 그러므로 월런은 슬픈 소녀 이론을 통해, 소녀들의 슬픔의 역사를 (성차별적인 세상에 대항해) 소녀들이 반응하고 저항해 온 역사로 재탄생시키자고 제안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부정적 나르시시즘의 편에 서기를, 그와 함께 (그 끝이 공허일지라도?) 가속하기를 택하는 것이다. “소녀들의 슬픔은 조용하거나, 약하거나, 부끄럽거나, 멍청하지 않다. 그것은 활동적이고, 자율적이며, 명료하다. 그것은 반격의 한 방법이다.”” (1장 슬픈 퀴어 초상, 26페이지)

“이곳처럼, 어떤 공간은 분명 과잉 성애화된다. 당신이 원래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성별이나 외모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길 바라든 간에, 당신의 모든 몸짓과 말과 눈길은 고스란히 이곳이라는 예외적 공간에서만 허락되는 비밀스러운 암호로 재배열된다. 이곳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전부인 스타일의 분류학은 이곳을 지배하는 암묵적인 규칙이다. 여기서 고리타분한 이분법이 유용해진다. 당신은 머리가 길고 화장을 했기에 부치를 찾는 팸이다. 당신은 머리가 짧고 가죽 부츠를 신었기에 팸을 찾는 부치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당신은 그냥 복장도착자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일종의 롤플레잉이지만, 그렇다고 진짜가 아닌 건 아니다. 부치들 팸이든 복장도착자든 이곳에 모인 몸들은 각자의 질량에 대응해 서로에게 감응하고 충돌한다. 잠재적으로 당신을 원하거나 혹은 완전히 무관심한, 그러므로 수치심을 유발하는 에로틱한 다른 몸들 사이에 놓인 당신은 자신의 몸을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감각한다.” (3장 뉴플 스케치, 50페이지)

“이제 우리는 〈엣지러너〉가 제공하는 사이버펑크적인 스타일의 외피에서 살짝 비켜서서 이 작품을 도시 빈민 소년에 대한 우화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데이비드는 살기 위해 사이버웨어를 장착하고, 사랑에 빠지고, 위험한 일을 시작하고, 동료들의 죽음을 겪고, 일종의 정서적 무감각 상태에서 높이 날아오르다가 결국 가파르게 추락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그는 끝장을 내기 위해 최악의 적에게 제 발로 걸어들어간다. 살기 위한 선택이 곧 삶 자체를 축소하고 소진시키는 선택이기도 할 때 이러한 선택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살에 가까운 죽음뿐인가? 자신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선택지 속에서 아등바등대며 분투해봤자 결국 거대 기업에 의해 간접적으로 살해당할 뿐인 하위 주체들의 삶을 묘사한 우화가 속할 장르는 과연 비극적인 드라마인가, 아니면 슬랩스틱 코미디인가? 로렌 벌랜트의 용어를 빌리자면 시트콤과 비극을 결합한 조어인 “상황적 비극”으로 부를 만한 〈엣지러너〉는 데이비드라는 도시 빈민 소년을 주인공 삼아 삶의 유일한 목표가 생존이 될 때 주체가 어떻게 닳고 찌그러지는지를 총 10화에 걸쳐 느릿하게 보여준다.” (4장 문제는 디자인이다, 64페이지)

“왜 트위터로부터 멀리 떨어져 ‘정상적인’ 그리고 ‘쓸모 있는’ 인간성을 회복할 만한 시간과 여유가 있는 소수의 특권적인 사람들의 훈계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세상은 이미 쓸모 있는 것들, 그럼으로써 시장에서 교환될 만한 가치를 가지는 것들로 넘쳐난다. 그런 신물 나는 경제 논리에 포획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몇 달간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들어가 ‘디지털 디톡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한심하고 쓸모없는 시간 낭비로부터 일말의 유용성을 긁어모으는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트위터를 계속한다면 뇌가 망가지고 그것이 주는 쾌락에 구속되어 더 이상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될 거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밤낮으로 해대는 세상에 맞서기 위한 유일한 전략은 오직 지금보다 더 한심하고 쓸모없게 구는 것이다.” (5장 한심하고 쓸모없는 트위터 중독자들, 81페이지)

“나는 이러한 이론적 참조점을 배경에 두고 ‘저급 이론들의 연합’을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진 세 번의 라운드테이블로 구성했다. 야광 콜렉티브(김태리, 전인)와 홍지영과 함께 한 첫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여성, 퀴어, 콜렉티브”라는 제목으로 ‘콜렉티브’라는 협업 또는 친밀성의 형식, 레즈비언 ‘미학’의 특수성에 관한 질문들을 나눈 자리였다. 우리는 레즈비언의 최소 정의를 비워둔 채 무책임한 ‘인상 비평’을 던지며 과연 ‘레즈비언적인 것’이란 무엇인지 탐문했다. 강덕구, 이여로와 함께한 두 번째 라운드테이블, “아마추어리즘과 비평”에서는 아마추어리즘, 블로그 네트워크, (청년 세대에게는 더더욱 구축하기 힘겨워진) 독립적인 보상 피드백과 우정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나는 이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퀴어(한) 스타일과 태도로서의 실패를 각기 다른 학제적/공동체적 맥락 내에 존재하는 아마추어적인 것, 소수자적인 것들과 간접적으로 연결해보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문상훈, 양승욱, 이반지하와 함께 한 세 번째 라운드테이블은 “실패의 퀴어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는 예술 기금으로 표상되는 공적 기관/제도/체계로부터 인정, 퀴어 예술(계) 내부의 차이, 축적되는 실패의 감각에 대한 우울하고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7장 라운드테이블 “레즈비언 미술은 왜 구린가”, 98~99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