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과 범죄


아돌프 로스 지음
현미정 옮김
2018년 8월 10일 발행
ISBN 978-89-94027-91-3
152x220mm / 352페이지
값 25,000원

 
우리에게 「장식과 범죄」라는 글로 잘 알려져 있는 아돌프 로스는, “로스는 우리의 발밑을 쓸었다”고 말한 르 코르뷔지에의 표현대로 아르누보 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 시대를 알리는 건축을 정의하고 실현한 건축가로 평가 받는다. 건축가로서의 명성 외에도 그를 자주 언급하고 인용하는 이유는 그의 저작과 관련해서이다. 1921년 발간된 『허공에 외쳤다』와 1931년 발간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1896년 로스가 미국에서 돌아와 여러 언론매체에 쓰기 시작한 사설과 논평, 강연들을 묶은 책으로 건축을 포함한 당시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비평서다. 이 책은 이후 지속적으로 재판, 재편집, 각국의 번역본 등으로 출판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1931년 인스부루크의 브렌너 출판사가 문장을 소소하게 수정, 삭제하여 펴낸 판본이 재편집되어 발간되거나 번역본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아돌프 로스가 생전에 직접 선별하고 편집한 판본이므로 로스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을 것으로 판단하였고 따라서 여타의 번역본들과 같은 재편집이나 도판을 첨부하지 않고 이 판본을 번역, 편집하였다. 단지 이 두 권의 책을 합본하고 로스의 글 가운데 가장 유명한 비평인 「장식과 범죄」를 제목으로 삼아 출간하는 점이 다르다 하겠다.

아돌프 로스는 1870년 지금의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석공이자 조각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로스는 어린 시절 공예공방 동네를 놀이터로 삼아 성장했고 그 후 보헤미아에 있는 공예학교와 빈의 미술대학을 거쳐 드레스덴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893년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카고 박람회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삼 년간 체류한다. 그곳에서 그는 공사판과 접시닦이를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빈곤 속에 살았지만 루이 헨리 설리반과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와 같은 인물들로 대표되는 미국의 진보적 건축이 꽃피던 시기를 체험하고 완전히 새로운 건물유형(고층건물, 사무실건물과 백화점 등)과 이를 표현하는 새로운 정신을 접하고 큰 자극을 받는다. 세기의 전환기에 실용과 합리를 추구했던 미국이 지향한 고전주의 건축에서 로스는 고대의 형태적 자산과 그리스적 가치관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그의 건축관에 본질적인 요소로 자리 잡는다.

26세의 나이로 빈에 귀향한 로스는 영미의 근대성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오스트리아의 퇴행성을 보고 그의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건축가로서 사무실을 열었지만 일은 들어오지 않았으며, 평론가로서의 활동은 허락되어, 그의 전방위적인 문화비평의 시기를 연다. 처음에는 주간지와 일간지에, 1903년 이후로는 문인이자 그의 지우인 페터 알텐베르크와 함께 주간한 자신의 잡지에 글을 발표하며 특히 당시의 주류세력이었던 제체시온(빈 아르누보)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카를 크라우스라는 인물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다. 탁월한 언어능력으로 논쟁과 풍자의 대가였던 크라우스는 『횃불』이라는 자신의 잡지를 도구로 ‘예술의 도시’ 빈에 숨겨져 있던 위선과 부패를 들춰내고 비판한 인물이었다. 당시의 빈은 왜 이러한 인물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까.

당시 빈은 벨 에포크(Belle Époque)로 불리는 시대를 입증하고도 남을 만큼 문학, 음악, 미술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에 대한 몰입은 시대의 변화와 보조를 맞추지 못한 19세기 후반의 오스트리아(또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사회적 구조를 외면하는 일종의 도피처였다. 그래서 로스를 비롯해 그와 뜻을 같이했던 소수의 인물들에게 이 탐미주의는 근대를 맞이하는 진정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현재의 나를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게으른(니체의 표현에 따르면)’ 자들의 구태와 봉건성이 넘쳐났고, 또한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과장과 과잉을 일삼았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로스의 분노는 그래서 그들의 양식이나 취향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허세와 위장을 향한 것이며, 나아가 그의 치열한 투쟁은 그 가면을 벗기고 ‘오늘’에 뿌리박은 시대의 진정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찾은 건축의 진정성은 고트프리드 젬퍼가 주장한 목적, 재료, 기술에 있었다. 즉 건물의 실제 목적에 부합하는 건축, 재료를 위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축, 그리고 그 시대가 보유하고 있는 진보한 기술로 지어진 건축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진정 그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며 그래서 아름다움으로, 그 시대의 양식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과 도시는 어느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고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될 수 없다. 도시의 건축은 그 집단의 정체성의 표현이며 모든 주거인에게 공평한 보편성을 담보해야 한다. 그래서 로스는 그 시대의 정신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건축을 천재 개인이 만들어내는 예술의 영역에서 제외시키고 ‘전통’을 언급한다. 그런데 바로크의 도시 빈에서 그가 건져 올린 전통은 고대의 정신이었다.

전시대의 봉건성을 탈피하고 근대정신에 뿌리박은 시민계급의 문화를 추구했던 로스에게 합목적성을 바탕으로 한 고전주의는 피해갈 수 없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건물은 특히 외관에서 고전주의의 면모를 강하게 보여주는데 반해, 내부공간은 상당히 자유로운 구성을 보여준다. 이는 로스의 논리에 따르면 공간의 합목적성과 공간계획(Raumplan)의 실현이지만, 그 결과 그의 내부공간은 다양한 경험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엄격하고 단단한 외피로 둘러싸인 개인의 자유로운 공간을 생산한다. 이 점이 로스의 중요한 업적일 것이다. 형태는 보편을 지향하지만 공간은 개별성을 지향한다는 점, 눈에 보이는 형태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 주력한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함은 분명 인간 정신의 성숙일 것이다.

물론 당시에 로스만 이러한 인식을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근대 건축 운동은 말기에 형식적인 공간분할로 건축의 고유성을 상실했으며, 이후에 나타난 형태의 모호성으로 건축의 보편을 잃어버렸던 사실을 상기해 볼 때, 그리고 지금도 상당부분 이 지점에서 방황하고 있는 현대 건축을 볼 때, 현대의 건축가들이 로스를 다시 찾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듯 이 책이 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는 문필가로서의 재능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새로운 건축에 관한 논리와 제시, 사회 전반에 걸친 그의 굽히지 않는 저항과 비평이 세기가 바뀌어도 여전히 설득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차

허공에 말했다

초판을 내면서
공예학교의 학생전시회
오스트리아 박물관의 성탄절 전시회
공예전망 1
공예전망 2
오스트리아 박물관의 영국학파
은세공 공방과 그 이웃
신사복
새로운 양식과 청동 산업
인테리어
로툰데의 인테리어
앉는 가구
유리와 점토
호화 운송수단
배관공
신사 모자
족복(足服)
제화공
숙녀복
건설 자재
피복의 원리
속옷
가구
1898년의 가구들
인쇄공
오스트리아 박물관의 겨울 전시회
오스트리아 박물관 둘러보기
빈의 스칼라 극장
멜바와 함께한 나의 등단
어느 가난한 부자의 이야기
저자 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판을 내면서
두 권의 『다른 것』에서 발췌한 글들
나의 생애에서
도자기
최고로 아름다운 내부 공간, 최고로 아름다운 궁전, 최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물, 최고로 아름다운 새 건물, 최고로 아름다운 빈의 산책로
나의 건설학교
문화
과잉의 것들
문화의 변질
장식과 범죄
울크에게
건축
소간주곡
빈 사람들에게 고함
미하엘러플라츠의 집에 대한 두 논평과 편지 하나
음향의 불가사의
베토벤의 병든 귀
카를 크라우스
산에 집을 짓는 자들을 위한 규칙들
향토 예술
손 떼!
페터 알텐베르크와의 이별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들
단지 주민의 날
주거를 배우자!
가구의 추방
장식과 교육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그의 동시대인들
현대의 주거단지
짧은 머리
가구와 인간
요제프 파일리히

옮긴이의 글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 소개

아돌프 로스
현재의 체코 브르노에서 태어나 빈에서 활동한 오스트리아의 건축가이자 비평가이다. 그는 「장식과 범죄」(1908)를 비롯한 많은 사회 · 문화 비평들로 빈 아르누보(제체시온)에 반기를 들고 현대의 정신이 나아갈 바를 제시하였다. 후에 『허공에 말했다』(1921), 『그럼에도 불구하고』(1931)로 발간된 그의 논평들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또 이에 못지않게 그의 첫 번째 건물 미하엘러플라츠 하우스(1911)는 당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고, 르 코르뷔지에가 “우리의 발밑을 쓸어주었다”고 평하듯 근대건축의 신호탄이 되었다. 그의 치열한 투쟁은 외롭고 험난한 길이었지만 오늘날 그의 글들이 끊임없이 회자되고 또 중요한 근대 건축가로 거론된다는 것은 분명 그가 “허공에 말하지 않은” 증거일 것이다.


역자 소개

현미정
한국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베를린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건축설계를 강의하고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번역을 하며 건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책 속에서

“실용적이라 함은 그래서 모든 의자에 해당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실용적인 의자만을 만든다면, 우리들은 실내장식가의 도움 없이도 완벽하게 집을 꾸밀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가구는 완벽한 방을 만든다. 그래서 우리의 도배공이나 건축가, 화가, 조각가, 실내장식가 등등의 과제는 그곳이 화려한 공간이 아닌 주거공간인 한, 완벽하고 실용적인 가구를 생산하는 것에 머물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는 이 분야에서 영국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가구장이들에게는 이를 복제하라는 충고밖에는 할 수 없다. 우리 가구장이들도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더라면 분명 누구의 영향 없이도 그 비슷한 가구를 생산했을 것이다. 왜냐면 한 문화권 내에서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가구들 사이의 차이란 아주 미미해서 민감한 전문가의 눈에나 띌 정도기 때문이다.” (67페이지)

“최고로 아름다운 내부 공간. 슈테판 대성당. 내가 너무 뻔한 말을 했나요? 그렇다면 더더욱 좋군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교회 공간을 가지고 있다고 그리 자주 말할 순 없을 테니까요. 이것은 우리가 우리 아버지들에게서 물려 받은 죽은 유품이 아닙니다. 이 공간은 우리에게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해줍니다. 전 세대가 여기에서 함께 일했고, 그들의 언어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를 제외하고. 우리는 그들의 언어로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공간은 가장 훌륭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사십 년 동안 그 동업자들이 침묵했기 때문이지요. 교회의 창을 알아 볼 수 없는 황혼녘. 그러다 공간은 그에게 밀려옵니다. 그 순간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압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공간을 지나 거리로 발을 내딛는 순간, 자신을 엄습하는 그 느낌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베토벤의 5번보다도 강렬합니다. 5번은 삼십 분이나 걸리지요. 성 슈테판은 삼십 초면 족합니다.” (209페이지)

“오늘날 인류는 예전보다 건강하다. 병든 자들은 몇몇 소수뿐이다. 그런데 이 소수가 너무 건강해서 어떤 장식도 발명할 수 없는 노동자들에게 폭군처럼 군림한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자신이 발명한 장식을 여러 가지 재료에 시험해 볼 것을 강요한다. 장식의 변화는 생산품의 보다 빠른 가치하락을 초래한다. 노동자의 시간, 사용된 재료는 사라져 버릴 자본인 것이다. 원칙 하나를 말하겠다. 어떤 물건의 형태가 오래도록 유지되면, 다시 말해 오래도록 싫증나지 않는다면, 그 물건은 물리적으로 그만큼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이다. 내가 설명을 해보겠다. 양복은 값비싼 모피보다 자주 그 형태를 바꿀 것이다. 하룻밤을 위한 여자의 무도회복은 그 형태를 책상보다 빠르게 바꿀 것이다. 아, 그런데 이럴 수가, 그 낡은 형태가 참을 수 없어서 책상을 무도회복만큼 빨리 바꾼다면, 책상에 사용한 돈은 잃어버리는 것이다.” (231페이지)

“현대의 인간은, 현대의 신경을 가진 인간은 장식이 필요치 않습니다. 반대로, 그는 그것을 혐오합니다. 우리가 현대적이라고 칭하는 모든 사물들은 장식이 없습니다. 우리의 옷, 우리의 기계, 우리의 가죽제품 그리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사물들은 프랑스 혁명 이후 더 이상 장식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의 물건을 제외하고. 이것은 그러나 다른 주제입니다.
장식은 일부의 인류가 — 나는 그들을 문화가 없는 부류라고 칭합니다 — 좌지우지하는 사물에만 있습니다. 바로 건축가들입니다. 건축가의 영향 아래서 생산된 일상용품들은 언제 어디서나 시대 적절하지 않은, 다시 말해 비현대적인 것뿐입니다. 이는 물론 현대적 건축가들에 의해서도 만들어지지요. …… 일상용품에 예술을 허비하는 것은 문화가 아닙니다. 장식은 더 많은 노동을 뜻합니다. 자신의 이웃에게 과잉의 노동을 짊어지게 한 18세기의 사디즘은 현대의 인간에겐 낯선 것이며, 그에게 더더욱 낯선 것은 원시민족의 장식입니다. 그것은 철저히 종교적, 에로스적 기호의 의미이며 그 원시성 덕분에 예술과 구분되는 것입니다. 장식이 없음은 매력이 없음이 아니고, 새로운 매력으로서, 살아 움직입니다. 덜걱거리지 않는 물레가 그 방앗간 주인을 깨웁니다.” (309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