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총서 5] 새로운 질서




민구홍 지음
미디어버스 발행
강문식 디자인
2019년 11월 14일 발행
ISBN 979–11–966934–9–7 04600
978–89–94027–74–6 (세트)
100x150mm / 128페이지
값 10,000원


책 소개
윤원화의 『문서는 시간을 재/생산할 수 있는가』를 시작으로 2017년부터 미디어버스에서 펴내는 ‘한 시간 총서’의 다섯 번째 책 『새로운 질서』는 워크룸 편집자 겸 민구홍 매뉴팩처링 운영자 민구홍이 혼자 또는 마음이 맞는 동료와 함께,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진행해온 동명의 교양 강좌를 간추린 결과물이다.
크게 공유(강의와 대화), 실천(연습과 실습), 비평으로 이뤄진 강좌는 컴퓨터 언어, 특히 HTML, CSS, 그리고 약간의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를 도구 삼아 정보의 새로운 질서를 탐구한다. 수강생은 자신의 관심사에 관한 목록을 작성하고(질서 1), 여기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 웹사이트로 치환한 뒤(질서 2), 여기에 또다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해 특정 공간에 선보이게 된다.(질서 3) 이 과정에서 수강생은 몇몇 성공을 통해 실패에 익숙해지며 단계별로 매체가 변모하는 국면을 주도해보는 방법을 익힐 것이다.
책은 강좌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목록에서 시작해 웹을 이루는 대표적인 컴퓨터 언어인 HTML, CSS를 가로지른다. 단, 언어의 면면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대신 원리와 접근법, 그리고 곱씹을 거리를 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은이의 말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기술을 인쇄물로 박제하는 것은 공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원리를 이해해 실제로 이를 적용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 있다.
학교가 어색함 없이 질문할 수 있는 곳이라면, 책은 궁금증을 환기하지만 정작 물리적으로 질문에 대응할 선생이 없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는 온전한 학교가 될 수 없다. 유년 시절 정식으로 몬테소리(Montessori) 교육을 받았다는 지은이는 책의 태생적 약점을 보완하고자 자신이 경험한 정신을 살려 몇 가지 간단한 장치를 마련했다. (초등)교육자의 자세로 되도록 표준 용어를 사용하고, 이미 전한 말을 연거푸 반복하는 한편, 곳곳에 내용과 관련한 연습 및 실습 도구를 제공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그렇게 독자는 실제로, 또는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어보거나 떠올려보며 자신만의 새로운 질서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실용서의 형식을 띤 문학 작품?
강좌를 간추렸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학습서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지식을 가장하는 사변적인 정보, 명사와 동사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형용사나 부사, 더러 눈에 띄는 은유나 환유는 그와 거리 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을 단순히 실용서로만 대한다면 대단히 중요한 뭔가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미리 말해두지만, 어떤 대목이 교육적으로 읽힌다면, 이는 결코 지은이 책임이 아니다. 독자에게 권하는 책을 온전히 읽는 방법 하나는 장마다 책의 제사(題詞, 책 첫머리에 적은 책과 관계된 노래나 시), 즉 미국 드라마 시리즈 『트윈 픽스(Twin Peaks)』의 등장 인물 루시 모런(Lucy Moran)의 역사적 첫 대사를 되새기는 것이라고 한다.

“보안관님, 피트 마텔(Pete Martell) 씬데요, 음, 전화 돌려드릴게요. 빨간색 의자 옆 테이블에 놓인 전화기로요. 벽에 붙은 빨간색 의자요. 테이블 위엔 램프가 있고요. 그 왜, 전에 우리가 저쪽 구석에서 옮긴 램프 있잖아요. 전화기는 검은색 말고, 갈색이요.”

한 시간 총서
미디어버스에서 펴내는 ‘한 시간 총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책이라는 견고한 물질로 만들어왔습니다. 지은이는 진행해온 강좌의 순간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특별히 제작한 웹사이트를 통해 원고를 정리한 한편, 총서의 디자인 시스템을 고안한 강문식은 형식 면에서 한 차례 완성된 원고, 즉 웹사이트를 인쇄물의 문법을 활용해 책으로 번역했습니다. 총서 발행인 임경용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어쩌면 “웹사이트로 통하는, 부피와 무게가 있는 QR 코드”일지 모릅니다. 쪽 번호 없이 열람하는 기기마다 달라지는 웹사이트를 다시 책으로 치환하는 일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하나의 내용을 웹사이트와 책, 서로 닮았지만 전혀 다른 두 매체를 오가는 데 일조하는 이 “QR 코드”는 내용과 형식을 대하는 접근법 면에서 또 다른 곱씹을 거리를 제공합니다.


목차
머리말
목록
인터넷과 웹
내게 웹사이트는 지식의 강을 따라 흐르는 집이다. 당신은? /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기 전에
HTML
CSS
또 다른 CSS
자바스크립트
추억 속으로


저자 소개
민구홍
일곱 살 무렵 매킨토시 LC III로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 중앙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하지만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하는 편이다.)을 공부했다. 안그라픽스를 거쳐 워크룸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실용 총서’ 등을 기획한 한편,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한다. 지은 책으로 이 책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가, 옮긴 책으로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작업실유령, 2017)가 있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과일 가운데 크기 순으로 수박, 멜론, 복숭아, 무화과, 체리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https://minguhong.com




책 속에서



“목록이 아름다운 까닭은 특정 논리에 따라 배열된 정보의 질서 때문이다. 어떤 글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것이 다름 아닌 글자의, 단어의, 구절의, 문장의, 문단의 목록임을 감지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떤 웹사이트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것이 다름 아닌 파일의, 태그의, 요소의, 하이퍼링크의, 글의, 이미지의, 영상의, 상자의, 문서의 목록임을 감지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9페이지)



“웹사이트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미 마친 작품을 보관하는 창고는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작품은 세상에 선보인 순간부터 죽어가기 시작한다. 웹사이트를 포함해 상호작용을 수반한 어떤 것이든 본질적으로 영원한 미완성 상태다. 어딘가 불완전하고 벌레도 몇 마리 꼬일 것이다. 그것이 웹사이트가 품은 아름다움의 요체다. 웹사이트는 살아 있는, 따라서 죽기도

하는 공간이다.” (48페이지)



“하이픈 프레스(Hyphen Press)의 발행인 로빈 킨로스(Robin Kinross)는 ­『왼끝 맞춘 글: 타이포그래피를 보는 관점(Unjustified Texts: Perspectives on Typography)』‑에서 독일 출신 스위스 타이포그래퍼 얀 치홀트(Jan Tschihold)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타이포그래퍼는 깐깐해야 한다. 세부만 잘 정리해도 좋은 타이포그래피가 나오기 때문이다.” HTML과 CSS야말로 웹사이트의 고갱이이자 타이포그래피다. 프런트엔드에 한해서는 둘 또는 HTML만으로도 충분히 모자람 없는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다. 이미 수많은 웹사이트가 그렇게 만들어졌고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눈 높은 누군가는 어딘가 미진한 기분이 들지 모른다.” (109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