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총서 6] 동물성의 잔상




허호정 지음
구정연 편집
미디어버스 발행
강문식 디자인
2020년 10월 1일 발행
ISBN 979-11-90434-07- 2
978–89–94027–74–6 (세트)
100x150mm / 60페이지
값 10,000원


책 소개
이 책은 미술비평가이자 기획자 허호정이 2019년 11월 기획한 전시(《동물성 루프》, 이민주와 공동 기획, 박보나, 임정수, 차미혜, 하상현 참여)의 이전과 이후를 다시 엮은 결과물이다. 저자는 과거의 기록물들로부터 이미지가 현재화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더 이상 실황으로 공연되지 않거나, 이미 파기되어 흔적만 남은 작품, 직접 몸으로 경험하지 못하며 역사상의 기록으로만 남는 이미지들을 현재에 마주할 때, 현존의 경험에 대비되어 그 위상을 가늠하게 되는 기록/이미지들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여기서 실황, 현존, 살아 있음과 그에 대비되는 죽음, 사후성 등의 개념적 이해는 ‘동물성’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재배치된다.
이때, 퍼포먼스 담론 안에서 기록물에 관한 논의를 참조한다. 그리고 전시 《동물성 루프》를 통해 던졌던 퍼포먼스와 도큐멘테이션의 관계에 관한 물음을 다시 한번 정리한다. 이야기는 퍼포먼스에 국한되지 않으며, 생생하지 못하고 열화 되었으며 실효가 없다고 간주되는 과거의 이미지들이 현재의 ‘읽기’를 통해 그 자신의 위상을 확인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리하여 이 책은 ‘동물성’이라는 단어가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현존의 생생한 살아있음을 반문하고, ‘잔상’으로 남은 기록과 흔적을 조명한다.

저자소개

문학과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비평적 글쓰기와 미술사 서술을 고민한다. 이미지의 발생과 전시의 경험을 모색한다. 「전시 경험의 시세: 낙차를 견주기,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크리틱칼, 2018), 「망각의 요구」(계간시청각, 2018), 「병에 ‘대하여’ 말하는 이미지」 (SEMINAR, 2020) 등을 쓰고, 전시 《내 눈이 가늘어진다》 (합정지구, 2019)를 협력 기획, 《동물성 루프》 (공-원, 2019)를 공동 기획했다.

책 속에서
지금의 글쓰기는 «동물성 루프»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나는 전시 이전과 이후를 다시 엮으려 한다. 그리고 전시와 퍼포먼스 담론의 영역을 넘어서는 데로부터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여기서 굳이 선별된 ‘퍼포먼스’라는 장르, 시간–기반 예술의 매체 특정적 정황은 주변적으로만 다뤄질 뿐 이 글의 논점에 해당하지 않는다. 앞서 서술된 모든 문장에서 ‘퍼포먼스’를 지우고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워도 질문은 유효하다.
그러니까 과거의, 이미 존재했던(혹은 이미 끝난), 지금은 ‘살아 있지 않은’ 이미지를 보는 경험에 대해 말해보자. 이 글은 어떤 전시의 사후적(posthumous) 작업이자, 동시에 어떤 종류의 사후성(after-life)과 관계하는 이미지의 발생을 다룬다. 이를 위해 이미지가 기록과 언어를 선회하여 발생하는 지점을 파편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이미지’ 경험, 그 시각적(visual) 경험이 ‘무엇의 효과’로 서술되기보다 그 자체의 힘을 마련하는 지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어지는 글은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시도한다. 과거 · 죽음 · 역사에 귀속하는 것은 어떻게 현재의 이미지로서 발생하고 감각되는가? (8페이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작가 자신의 이전 퍼포먼스 및 다른 역사적 퍼포먼스를 재연한 ‹Seven Easy Pieces›(2005)에서,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은 과거의 ‘그’ 퍼포먼스의 유일한 힌트가 됨으로써 실황 공연의 보충물이 아닌 다른 위상을 점한다. 도큐멘테이션은 실제 ‘그’ 퍼포먼스가 어떤 물리적 조건 안에서 행해졌는지 알려주는 여타의 정보가 극히 제한된 경우—이를 테면, 남은 ‘정보’는 사진 한 장이 전부인 발리 엑스포트의 ‹Action Pants: Genital Panic›(1969)—에 오로지 이미지로써 다른 정황을 상상하고 독해하며 재설정하도록 만든다. 결국, 아브라모비치가 ‘재연’과 ‘재현’의 문법으로 과거의 퍼포먼스를 수행한 ‹Seven Easy Pieces›는 실황 공연의 유동적인 상태와, 과거 작품을 재맥락화하면서 그 나름의 고정된 구조를 갖추게 된다. 이에 대해 유동적인 것과 구조적인 것의 이중적—양립 불가능한(incompatible)—상황을 지적할 수 있다.16 여기서 도큐멘테이션은 과연 퍼포먼스가 특정한 시점에만 존재하는, 휘발되고 한시적인, 유동적인(mobilized) 특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묻는다. (25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