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총서 7]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하기





글쓴이: 쑨거
옮긴이: 한윤아
미디어버스 발행
2021년 11월 19일 발행
100x150mm / 88페이지
ISBN 978–89–94027–74–6 (세트)
979–11–90434–18–8 (04600)
값 10,000원


책 소개

이 책은 중국의 사상가 쑨거가 2018년 1월 베이징의 인사이드-아웃 미술관에서 진행했던 포럼의 원고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의 아시아 4개국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한 «불협화음의 하모니» 전시 일환으로 마련된 이 포럼에서 쑨거는 일본의 사카이 나오키와 함께 ‘아시아적인 것/아시아성(Asianess)’에 대한 대담을 진행했다. 여기서 아시아 두 지성은 외부, 특히 서구에서 호명된 아시아가 내용이나 실체가 없는 허구적인 개념이라는 전제 하에서, 전지구적 지식 생산 구조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사카이 나오키가 후설을 경유하며 유럽중심주의가 어떻게 인간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아시아 지식인들이 무비판적으로 그 틀을 따르는가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했다면, 쑨거는 유럽을 기준으로 보편성이 만들어지고 특수성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갖는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이런 위계 안에서 ‘특수성’으로만 자리하는 아시아의 역사와 경험은 보편 이론 안에 기입되지 못했다. 쑨거는 미국의 지리학, 다케우치 요시미의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이택오의 정치사상 등을 두루 엮으며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새로운 보편성은 특수성 사이의 유사성을 포착하여 서로 연결하면서도 그 나머지에 해당하는 ‘차이'를 누락시키지 않는 방식이라고 말이다.

짧은 강연으로 이뤄진 글이지만 아시아를 본질적인 정체성으로 규정하지 않았던 루쉰, 다케우치 요시미를 따라 지역적인 이론의 계보를 만들어가는 쑨거의 사상적 여정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책을 번역한 한윤아는 역자후기에 해당하는 「아시아의 어긋남과 가능성을 둘러싼 질문들」이라는 글을 통해 이 대담에 등장하는 여러 맥락과 개념들을 상세하게 살피며 독자를 위한 친절한 관문을 제공하고 있다.


목차

2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하기 – 쑨거
57 [역자후기] 아시아의 어긋남과 가능성을 둘러싼 질문들 – 한윤아

글쓴이 및 옮긴이 소개

글쓴이: 쑨거(山眞)
1955년생.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일본 근대사상사, 비교문화를 연구하며 동아시아 담론을 이끌고 지식인들의 협력을 만들어내는 학자다.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도립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을 지냈고(2015년 퇴임), 도쿄대와 워싱턴대에서 객원연구원을, 릿쿄대와 하이델베르크대에서 객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베이징제2외국어대학에서 가르친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왜 동아시아인가』  (2018), 『중국의 체온』(2016), 『사상이 살아가는 법』(2013),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2007), 『아시아라는 사유 공간』(2003) 등이 있다.

옮긴이: 한윤아
기획자로 전시, 프로그램, 책을 만든다. 일본문학, 영상이론, 동아시아영화를 전공했고, 페미니즘과 문화이론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 및 미술현장에서 상영 및 전시 기획자와 프로듀서 등으로 일했다. 현재 타이그레스 온 페이퍼(www.tigressfields.com)라는 출판사와 플랫폼을 운영한다. 아시아의 이야기와 이미지 등을 엮어 그림책, 만화 등 시각 서사물을 만들고, 관련된 이론과 비평을 계속 출판하려고 한다.

책 속에서

이제 오늘 논의될 두 번째 문제, 아시아가 이론의 새로운 형태를 창조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소위 아시아에 이론이 없다는 말은, 아시아 지식인들이 형이상의 영역에서 문제를 토론하고 추상적으로 사유하는 데 능숙하지 않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보편성이 반드시 하나로 추상화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같은 부류의 사고입니다. 보편성은 형이상의 것일 수도, 형이하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시아 지식인들은 이미 이러한 두 종류의 보편성 사이의 연관성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하기」, 쑨거, 32페이지)

보편적 가치는 모든 인간에게 관철되어야 하지만 그 결과 모든 인류가 동등해진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동등은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다시 말해 동질성과 달리 동등함은 내용이 없어서 “위대한 도(道)”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토인비의 사상이 서구의 한계라고 서술한 바 있습니다. 토인비가 전개한 문명충돌론은 서구 근대를 유일하게 타당한 모델로 하여, 세계를 균질화하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실재적인 외적 충돌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케우치는 인류의 훌륭한 가치가 어디서 생산되었느냐 하는 기원보다 어떻게 공유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류의 훌륭한 가치는 소유의 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하기」, 쑨거, 38페이지)

우리는 여전히 토론을 더 밀어붙어야 합니다. 분별을 없애자는 원칙이, 약자를 차별하지 않고 다원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항의할 친구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구의 비판 이론에도 이런 서술은 부족하지 않아! 라고 말입니다. 사실, 헤게모니와 차별과 같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태도는 서구의 비판 이론에서도 이미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비판은 그저 언어 영역에 금지 구역을 만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정확히 이론으로는 타파할 수 없는 사회 풍토입니다. 비판의 논리가 아무리 투철해도, 차별이 없는 인식론적 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효과적인 길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올바름으로 무장한 글을 쓰면서도 편협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충분히 보지 않았습니까?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하기」, 쑨거, 47페이지)

인류 전체는 처음부터 다채로웠습니다. 유럽의 이론이든 아시아의 이론이든, 이론은 궁극적으로 가시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요소를 발견하는 지적 역량에서 비롯됩니다. 근본적으로 이론적 사고는 일종의 상상력이며, 질문을 발견하여 밀고 나가는 능력입니다. 추상적 방식으로 표현되건 구체적 방식으로 표현되건, 혹은 논리적 방식으로 추론되건 경험적 방식으로 지각되건, 그것이 문제의 관건은 아닙니다. 결정적 열쇠는 다른 형태의 이론적 사고를 통해 '진실'을 발견하는 지 여부입니다. 이론은 결코 목적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사고를 돕는 수단일 뿐입니다. 서로 다른 이론적 사고를 통해 진리를 추구할 때 진리는 원래 다양하고, 입체적이며 서로 연결되지만, 다면적이고, 다차원적이며, 통일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보편성이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보편성을 창조하기」, 쑨거, 55페이지)

고대 이래 ‘유럽의 황홀한 바깥 방향’, ‘지정학적 이웃’이라는 의미였던 아시아는 고정된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유럽이 변방이었던 시절, 즉 몽골과 이슬람, 중국과 인도제국이 우세하던 시기에는 오히려 ‘아시아’라는 말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아시아는 유럽 중심의 세계자본주의, 제국주의 등장과 더불어 다시 의미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한 지역이 일본이다. 당대 일본은 독일의 파시즘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대중매체에 ‘파쇼’라는 단어도 처음 쓰였다. 일본은 인종주의 정책을 가진 독일을 비난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일본은 인종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아시아 내부의 결속을 스스로의 사명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동아시아 공동체, 대동아공영의 구상을 내세워 아시아인을 백인 우월주의 족쇄에서 해방하는 일이 바로 일본의 사명이라 주장한다. 유럽이 명명한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내면화하는, 모순의 정체성이 시작된다. (「아시아의 어긋남과 가능성을 둘러싼 질문들」, 한윤아, 72페이지)

인사이드-아웃 미술관에서 이루어진 사카이 나카이와 쑨거의 대화는 ‘아시아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지식 생산, ‘이론’과 연결한 아시아의 문제이다. 사카이 나오키의 ‘이론’에 대한 의견은 쑨거가 이 글을 통해 서구로부터 탈환하려는 ‘보편성’이라는 개념과 공명한다. 즉, 이론은 추상화된 것, 보편적인 것, 역사를 초월한 지식의 집합체를 말한다. 철학이라고 할 수 있고, 과학적 보편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 대립하는 개별 지식은 경험, 사례, 역사, 사건, 지역 등의 개념으로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이런 이론의 형성과 쓰임이 서구와 비서구 아시아라는 지역의 배분과 연결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 두 학자의 대담을 이룬다. 이를 위해 아시아의 개념과 이 개념이 역사로 진입해온 과정을 먼저 다룬다. 그리고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에 가정된 관계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아시아의 어긋남과 가능성을 둘러싼 질문들」, 한윤아, 81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