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페미니즘: 소외를 위한 정치학
라보리아 큐보닉스 지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 옮김
양민영 디자인
미디어버스, 아그라파 소사이어티 발행
2019년 5월 31일 발행
ISBN: 979-11-966934-1-1 93600
한글, 영어 / 105x210mm / 102페이지
값 10,000원
자연이 부당하면, 자연을 바꿔라!
「제노페미니즘: 소외를 위한 정치학」은 2014년 피터 볼펜달과 레자 네가레스타니가 베를린 세계문화의 집에서 기획한 컨퍼런스에서 만난 여섯 명이 공동 집필한 선언문이다. 기술적 담론과 페미니스트적 사유와 실천 사이의 연계를 고려해 두고 쓰여진 이 선언문은, 지금까지 13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배포되었다. 이들은 기술을 미래의 페미니즘 철학을 현실화하는 가장 최적의 도구로 생각했고, 20세기 초 프랑스 출신의 수학자 그룹인 니콜라스 부르바키 이름을 애니그램으로 재배치해 라보리아 큐보닉스라는 일종의 에이전트이자 아바타를 만들어 선언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짧은 선언문이지만 인간이 역사적으로 성취한 기술적 발전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그것이 가진 전체주의적이면서 해방적인 가능성을 페미니즘적 실천 안에 어떻게 절합시킬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3명의 기획 출판 콜렉티브인 아그라파 소사이어티가 번역하고 미디어버스와 공동으로 출판하였다. 또한 아그라파 소사이어티와 라보리아 큐보닉스가 진행한 서신 인터뷰 내용도 함께 들어있어서 책의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목차
제로
인터럽트
트랩
패리티
어드저스트
캐리
오버플로우
라보리아 큐보닉스 인터뷰: 제노페미니즘의 새로운 경로
저자 소개
라보리아 큐보닉스 Laboria Cuboniks
라보리아 큐보닉스는 다이앤 바우어, 카트리나 버치, 루카 프레저, 헬렌 헤스터, 에이미 아일랜드, 패트리샤 리드 6명의 다국적 여성으로 구성된 예술가 그룹이자 사이버페미니스트 아바타다. 2015년 「제노페미니즘: 소외를 위한 정치학」을 공동으로 저술해 발표했다. 13개의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공유되고 있는 제노페미니즘 선언의 주된 내용은 정치적 불평등성을 엄호하는 자연의 폐기와 젠더의 해체이다. 그룹명이자 가상의 인격체로서 여성으로 간주되는 라보리아 큐보닉스의 이름은 20세기 초 프랑스 출신 수학자 그룹 니콜라스 부르바키Nicolas Bourbaki의 철자를 애니그램으로 재배치하여 만들었다.
역자 소개
아그라파 소사이어티
아그라파 소사이어티Ágrafa Society는 김진주, 이연숙, 이진실로 구성된 기획 & 출판 콜렉티브다. 아그라파ágrafa는 ‘문맹의’ 또는 ‘문자 체계가 없는’을 뜻하는 스페인어 형용사의 여성형으로, 아그라파 소사이어티는 문법 없이도 가능한 쓰기의 사회를 꿈꾼다. 리서치 기반의 프로젝트에 주목하여 시각 문화와 동시대 예술에서의 의미심장한 신호를 포착하고자 하는 활동으로서 웹저널 〈SEMINAR〉를 발간하고 있다. www.zineseminar.com
책 속에서
“제노페미니즘은 젠더폐지론자들이다. ‘젠더폐지’는 현재 인간 집단에서 ‘젠더화된’ 특징으로 간주되는 것들을 완전히 근절하기 위한 코드가 아니다. 가부장제 아래에서는 그러한 어떤 프로젝트도 재앙을 의미할 뿐이다. ‘젠더화된’ 것이라는 개념은 대개 여성적인 것에만 들러붙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이러한 균형을 바로잡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관심사는 세계의 다양성을 성차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다. 100가지 성들이여 피어나라! ‘젠더 폐지론’은 현재 젠더를 규정하고 있는 특질들이 더 이상 권력의 불균형적 작동을 위한 비교 기준이 되지 않는 사회를 구축하려는 야망의 약칭이다. ‘인종 폐지론’도 유사한 공식으로 확장된다. 그 투쟁은 현재 인종화된 특징들이 더 이상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눈동자 색에 지나지 않을 때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가 투명한 형태로, 또 탈자연화된 형태로 억압을 마주하게 되는 자본주의 체제 이래로, 궁극적으로 모든 해방적 폐지론은 계급 폐지의 지평을 향한다. 당신은 임금노동자이거나 가난하기 때문에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이거나 가난한 것이다.” (19페이지)
“초기 텍스트 기반의 인터넷 문화의 잠재력은 억압적 젠더체제에 맞서 주변화된 공동체들의 연대를 만들어냈다. 90년대 사이버페미니즘을 점화시키며 그렇게 새로운 실험 공간을 창출해낸 인터넷 문화의 잠재력은 21세기에 들어서자 시들해졌다. 오늘날 온라인 인터페이스에서 시각성의 지배는 정체성 정치와 권력관계, 그리고 자기-재현적 젠더규범이라는 익숙한 방식들로 복귀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이버페미니즘의 감수성이 오직 과거에 머물러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웹에 잠복해있는 억압의 가능성에서 전복의 가능성을 추려내면서, 페미니즘은 오랜 권력 구조의 은밀한 복귀에 대해 민감하게 대처해야 하는 반면, 그러한 잠재력을 요령껏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그것들을 보증하는 물리적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 즉 이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각기 다른 목표를 위해 대체될 수 있다. 제노페미니즘은 물질보다 가상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거나 가상이 물질보다 우선이라고 주장하기보다, 물질과 가상이 함께 구성된 우리의 현실에 이러한 지식을 효과적으로 개입시키기 위해 권력과 권력없음이라는 두 지점을 모두 확보한다.” (26페이지)
“우리는 ‘젠더 해킹’이라는 용어가 장기적인 전략으로 확장 가능한지, 아니면 해커문화가 소프트웨어에서 이미 이룬 업적과 유사한 웨트웨어wetware를 위한 전략인지 질문한다. 완전히 자유로운 세계이자 오픈소스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은 우리가 보아온 것들 중 실행가능한 코뮤니즘에 가장 가까운 작업이다. 3D 프린팅을 이용한 제약기술(리액션웨어), 풀뿌리 원격의료 낙태클리닉, 젠더 핵티비스트, DIY-HRT 포럼 등이 우리 앞에 배아 상태의 전망들로 이제 막 열리고 있다. 과연 우리는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무모함 없이, 이러한 전망들과 자유로운 플랫폼 및 오픈소스 약품을 조합하며 잘 기워갈 수 있을까?” (29페이지)
“제노페미니즘은 유동적인 지도 위에 승전의 X로 이질적인 미래를 구축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식을 그린다. 이 X는 운명을 표시하지 않는다. 이는 새로운 로직의 형성을 위한 위상학적-키프레임을 삽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반복에 매여있지 않은 과거를 긍정하면서, 좁은 통로, 조립 라인, 공급용 배관보다 더 풍부한 기하학적 구조를 지닌 자유의 공간을 확충할 능력을 위해 싸울 것이다. 우리는 자연화된 정체성에 맹목적이지 않은 새로운 지각과 행동의 장비affordances가 필요하다. 페미니즘의 이름에서, ‘자연’은 더 이상 부당한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되며, 그 어떤 것도 정치적 정당화를 위한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이 부당하면, 자연을 바꿔라!” (34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