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적 환대
기간: 2008.12.05 – 12.25
장소: 제로원디자인센터 1층 아카이브실
기획: 임경용

* "Beyond Art Festival 2008 I 변신변종_시각예술의 다중전략"의 전시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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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특정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매체이며, 책들이 모여 있는 도서관은 이러한 지식들이 조직되어 있는 장소이다. 흔히 우리는 도서관 안에는 모든 책이 있으리라는 상상을 한다. 도서관이 노골적으로 공공성을 표방할수록 그런 상상과 기대는 커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기대를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사람들은 도서관 안에 세상의 모든 지식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 같다. 혹은 도서관에 있는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보르헤스는 독특한 문학적 상상력 안에서 계속 증식하고 확장되는 가상의 도서관을 그려본 적이 있다. 그가 그려낸 바벨의 도서관은 '본질적으로는' 무한하지만 일정한 주기를 가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유한하다. 그는 '바벨의 도서관'을 통해 도서관 시스템의 한 유형을 그려낸 듯하다. 무한한 책을 보유한 도서관은 세상의 모든 연결이 현실화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된다. 그러나 가상적으로 존재하는 바벨의 도서관은 자신이 정해놓은 시스템에 다름 아니다. 세상에 단 한권만 존재하는 책은 그 책이 존재하는 장소의 규칙에 의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다.
반면 현실적인 도서관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경험적 특이성이 공식적인 지식으로 분류되는 과정을 상상해볼 수 있다. 지식은 책-매체를 통해 생산되고 도서관 분류 체계를 통해 선별적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체계는 선택과 배제가 작동한다는 의미에서 보르헤스가 상상했던 바벨의 도서관과는 다른 근대적 지식 시스템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가상적 무한함과 현실적 유한함의) 도서관 시스템을 지금의 문화적 조건 위에 겹쳐 놓을 수는 없을까?

임의적 환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임의적 환대'는 제로원 라이브러리 위에 자율적으로 기획되고 발행되는 일련의 출판 생산 시스템을 겹쳐놓는 프로젝트이다. 제로원 라이브러리는 디자인을 중심으로 시각 문화 관련 잡지를 보관하고 있는 장소이며, 이 안에 들어오는 잡지들은 소위 출판 시스템 내부에서 기획, 생산, 유통되는 것들이다. 반면 ISBN의 사용여부를 떠나 우리가 자율적 출판물이라고 판단한 책이나 잡지들을 시스템 외부의 결과물이라고 투박하게 정의 할 수 있다. 도서관에 있는 양서들을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업체가 있다는 점에서 시스템 외부에 놓여 있는 출판물들이 도서관 내부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모든 환대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임의적 환대라는 말은 형용 모순이다. 하지만 절대적 환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 안에 존재하는 모든 환대는 임의적일 수 밖에 없다. 보르헤스적 사고 안에서 도서관은 절대적 환대의 공간이지만 모든 도서관은 한정된 공간과 예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임의적 환대의 공간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은 동시대 문화 조건 안에서 서로 얽혀있는 예술 생산의 층위들을 가상의 도서관 시스템 안에서 풀어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초대된 20여개의 자율적 생산자들은 출판사, 레이블, 잡지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분류될 수 있으나, 기획-생산-유통의 다양성과 임의성 때문에 그런 분류는 무용하다. 임의적이라는 용어는 이들이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없고 동일한 가치에 봉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적합하지만, 다양성과 임의성이 이들의 활동을 참고할 만한(useful) 시스템으로 보증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는 100여개의 제로원 라이브러리 출판물과 20여개의 자율적 출판물을 동일한 평면 위에서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을 위해서 모든 출판물들에게 몇 개의 키워드를 임의적으로 부여했는데 이 키워드는 120여개의 출판물들의 임시적인 연결 고리가 된다. 우리가 제안하는 '임의적 환대'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20여개의 자율적 생산자들과 100여개의 잡지들이 임의적으로 구성하는 지식 시스템이다. 이 안에서 관람객은 자신만의 인덱스 카드 묶기를 통해 사적인 지식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다. 이런 활동에서 참고할만한 보편적 유용성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모든 관람객이 자신만의 인덱스 카드를 생산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를 제공할 뿐이다. 이 토대 위에서 활성화될 수 있는 무한한 연결을 발견하면서 자신만의 바벨의 도서관과 유용한 시스템을 상상해보는 것이 프로젝트의 근본적 목적이 아닐까. (임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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