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O 001 - Revisiting Artimo


Experimental Jetset, 2013


DLO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데드레터 오피스의 아이덴티티 작업으로, 익스페리멘탈 젯셋이  2003년 아르티모Artimo 출판사/서점을 위해서 작업한 아이덴티티를 재활용해서 만들었다. 아르티모는 인터넷 문화가 활성화되기 이전에 문을 닫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아르티모의 책이나 이들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아르티모에 대해 긍정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이 네덜란드 예술 책과 디자인에 미친 영향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Images: Experimental Jetset

나는 폴 엘리먼의 글 <과잉 정보>에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고 이후 2009년 3월 당시 뉴욕 뉴뮤지엄 큐레이터였던 주은지가 아트선재센터 1층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인 “어떤 나눔: 공공재원”에서 아르티모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나눔” 프로젝트에 대해 좀 이상한 방식으로 반응했던 것 같은데, 보통은 당시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현대미술 담론서나 아티스트 북에 매혹되거나 이 프로젝트를 위해 기꺼이 책을 보내준 해외 출판사를 고려해 도서관의 공공적인 성격, 호혜성 같은 것을 상상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여기에 초대된 책들에 대해 생각을 했다. 여기에 쌓이는 더미들은 마치 내가 만든 책처럼, 혹은 내가 앞으로 만들 책들을 미리 본 것 같은 기시감을 주었다.

그 가운데 아르티모의 책들은 내가 무언가를 기획하고 제작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던져야 하는 질문 중에 하나인 이 책의 독자는 누구인가? 에 대해서 다른 방식의 답변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추상적이고 모호하고 동시에 잔혹한 대중에게 어떤 가치를 이해시키기 보다, 내가 만들려고 하는 것에 반응할 수 있는 서클을 상상한 것이다. 주은지의 프로젝트에 놓인 책들은 대부분 너무 어렵거나 이상하거나 지나치게 아름답거나 (텍스트 책이라고 하기에는) 돈을 많이 들인 흔적을 가진 책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 우연히 모인 순간 나는 이러한 태도로 책을 만드는 가상의 공동체, 서클을 상상했다. 물론 그러한 서클은 같은 시공간에 위치할 필요는없다.  

어슐리 르 귄의 소설 <어둠의 왼손>에는 이상한 의사소통 수단이 등장한다. 일종의 양자역학 원리에 기반한 듯한 이 기구는 내가 어떤 판 위에 메시지를 쓰면 그 메시지를 받는 사람이 가진 기구 위에 동일한 메시지가 동일한 시간에 쓰여진다. 휴대전화를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르 귄이 말하는 이 기구는 와이파이나 어떤 물리적 연결이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의사소통을 위한 이 기구가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만남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어떤 나눔”에 있는 책들은 무덤에 누워있는 시체처럼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지만, 나는 이 주인없는 책들을 통해 앞으로 만나거나 만났던 어떤 서클을 상상했다. 

다시 아르티모로 돌아오자면, 왜 이들은 돈만 들어가는, 특별히 유용하지 않은 그러한 결정을 내렸을까? 그것은 합리성이나 자본주의의 효율성과는 분명히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후 미디어버스가 만드는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쓸모없는 아름다움useless beauty’이라는 말을 종종 썼는데(이 말도 분명히 누군가에게 듣거나 어느 책에서 보았을 것이다), 이건 내가 아르티모 책을 내가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후 나는 책을 기획하고 출판할 때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욕망하지 않는 책, 필요에 의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닌 책 같지 않은 책, 그것을 소유하거나 출판함으로써 내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책. 이러한 책은 소비자라는 위치를 밀어낸다. 소비자라는 위치에서 이 책을 소비하려는 순간 이 책은 당신을 밀어낼 것이다. 하지만 반면에 이 책은 귀중하지도 비싸지도 않고,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Images: Experimental Jetset

데드레터 오피스는 우리가 다시 재고할만한 어떤 계기들을 포착하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이것은 과거나 미래의 어떤 시점이 될 수도 있고, 개념이 될 수도 있으며, 책이나 장소나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항상 그러한 계기를 발견한다. 하지만 특정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대부분 무시될 것이다. 내가 아르티모를 통해 무언가를 느끼거나 인식했다면, 내가 이들의 책을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주은지의 프로젝트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세심하고 자세히 책들을 살펴야 했고 이것은 데드레터 오피스라는 프로젝트를 위한 조건이 되었다. 동시에 이를 통해 미디어버스나 북소사이어티라는 어떤 가상의 책 공동체를 상상할 수도 있었다.

한 때 존재했던 무언가와 의사소통을 시도할 수 있다면, - 르 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의사소통 수단처럼 - 시공간을 초월한 어떤 대상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그 결과는 어떤 방식으로 주어질까? 르 귄의 소설에서 답변은 즉각적으로 주어진다. 하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물들이 놓여있는 데드레터 오피스에, 만약 당신이 그곳을 방문한다면 무엇을 찾을 것인가? 이들 가운데 일부는 배송 도중 발신인이나 수신인을 분실했고 어떤 것은 수신인과 발신인이 그 물건을 거부했을 수 있다. 이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지만 당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신이 그것을 가진다면, (여기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의 호혜성이 작동하지 않기에) 당신은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에 대해 빚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빚은 당신이 그것을 현재화하는 순간 어떤 방식으로든 청산될 것이고, 그게 우리가 데드레터 오피스라는 일종의 유예의 공간을 만든 이유이다. (임경용)


1922년 워싱턴 DC의 데드레터 오피스, 위키링크


Dead Letter Office Identity by Experimental Jet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