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살기 Killer Move





잭슨홍 지음
옐로우 펜 클럽 글
신신 디자인
한국어/영어

2019년 10월 9일 발행
ISBN 979-11-966934-5-9 (93600)
200x305mm / 106 페이지
값 25,000원


책 소개

취미가에서 열리는 잭슨홍 개인전 《필살기》(2019.10.9~11.6)의 일환으로 발행된 책이다. 잭슨홍은 디자이너 출신의 현대 미술가라는 별칭에 걸맞게 완성도 높은 시각적 결과물을 선보여왔다. 개인전 《Autopilot》과 《ECTOPLASMA》의 깔끔한 마감의 작품들은 마치 공산품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 없는 아름다움만 남겨 놓은 듯이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쿨’한 작업의 완성도와 상반되는 농담이나 장난에 가까운 어조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잭슨홍의 농담은 기묘한 기운의 인체 조각으로 구현되거나 절반만 완성된 자판기, 잡지 가판대를 흉내 낸 동인지, 삶을 예찬하는 트로피, 어설프게 디자인된 로봇까지 다채롭다. 이런 작품의 감상 방법은 제작자의 의도보다는 감상자 개인의 독해로 귀결된다. 같은 대상을 보며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완벽하게 대비되는 지점에서 소비할 수 있는 아슬한 경계를 만든다. 그 경계 밖에서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는 미술가가 바로 잭슨홍이다.

이번 전시 《필살기》에는 잭슨홍이 미술을 대하는 행보가 스며있다. 각종 장르 속 ‘필살기’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만드는 요소가 무채색 조형물이 되어 공간을 점거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극적인 긴장감을 연출한다기보다는 살의 하나 없이 모호하게 부풀려진 스케일로 벽면을 가득 채운다. 잭슨홍이 선택한 필살의 기술은 상대를 제압하는 강력한 의지라기보다는 추락하는 듯이 보이는 불새의 모습처럼 ‘탈출과 자폭’에 가까운 서늘한 온도의 웃음 같다. 작품을 대하는 섬세한 손길은 “도면이 있기에 다시 제작할 수 있다”라는 작가의 입버릇과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낯익은 풍경도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현대의 삶 속에서 개인이 추구하는 애정과 냉소는 이 시대를 반영한다. 이성적인 설계에서 출발한 ‘질주하는 관’이 모노톤의 풍경에 당도하였을 때, 전에는 공존하기 어려웠던 잔잔한 애정을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목차

전시소개
설치장면
“어셈블”을 기다리며 – 루크
설치장면
Every Man has His Humor – 총총
설치장면
우리 언니의 킬링 파트: 케이팝 유니버스의 필살기 – 김뺘뺘
설치장면
작품정보


저자 소개

잭슨홍
작가 혹은 제품 디자이너.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산업디자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크랜브룩아카데미오브아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개인전으로 (갤러리2, 2010), (김진혜갤러리, 2008), (Gallery 2, 2008) 등이 있고, 단체전으로는 <대학로 100번지>(아르코미술관, 2009), (메종에르메스도산파크, 2009), (두아트서울, 2008) 등이 있다.


책 속에서

“필살기란 무엇인가. 오의, 궁극기, 즉사기라고도 불리며, 적에게 가장 큰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기술이다. 필살기는 가장 화려하고 강력하며 그렇기 때문에 사용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최후의 순간까지 아껴두는 어떤 것이다. 어린 시절 로봇 만화에서 주인공이 계속 악당에게 두들겨 맞다가 마지막 순간에서야 합체하고 필살기를 사용하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곤 했을 것이다. 그냥 처음부터 필살기를 썼으면 금방 끝날 텐데 굳이 저 고생을 하는 이유가 뭘까. 답은 간단하다. 그래야 필살기가 진정 멋지고 강력하게 보이니까. 그래서 사실 필살기의 핵심은 기다림이다. 손오공이 지상의 생명체들에게 기를 나누어 받아 원기옥을 만들어 최후의 일격을 날리듯 조금씩 쌓아온 시간들에 결실을 주는 순간이다.”
-      『어셈블』을 기다리며, 27페이지

“잭슨홍 개인전 《필살기》는 주로 영화, 일본 만화 등에서 유래한 무기의 구조를 재현한다. 불주먹, 미사일, 기폭장치 같은 무기는 여러 서사에서 반복적으로 변주되며 등장하여 클리셰가 된 것들이다. 잭슨홍은 서사에서 그것들만 추출하여 정교하고 매끈하게 만든다. 만화책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 같은 흑백의 구조물은 과도하게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서사 안에만 존재하던 상상의 물체를 실제로 사용가능하게 제작한 것처럼 보인다. 팔에 달린 미사일은 당장이라도 발사될 것처럼 완벽한 제품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표면은 매끈하게 정리되어 있고, 로켓을 받치고 있는 거치대는 정교하게 움직인다. 기폭장치에는 토글스위치 6개와 버튼스위치가 이중으로 장착되어 있다. 안전과 직결된 만큼 정교하고 세심하게 고안된 기계의 스위치는 한번 ‘딸깍’ 올려서 그 성능을 시험해보고 싶게 한다. 이로써 잭슨홍은 서브컬처의 관습적인 장치를 현대미술 전시의 문법으로 전환시키면서, 2차 창작이라는 서브컬처 특유의 문화를 재맥락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테다.”
-      Every Man has His Humor, 54페이지

“케이팝 산업이 물이 오르다 못해 과잉 팽창된 현재, 매주 새로운 아이돌이 데뷔하고 기성 아이돌이 컴백한다. 시청자가 결코 잊지 못하는, 투표를 하고 돈을 쓰고 짤을 찌고 ‘좋아요’를 누르게 하는 모멘트는 생존과 직결된다. 수많은 경쟁자 사이에서 ‘차트인’ 하기 위해서는 이번이 마지막 활동이라는 심정으로, 매 컷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달려 있다는 각오로 임해야만 한다. 그 노력이 가장 돋보이는 방식으로 촬영, 편집되어 적절한 인터페이스에 안착해야 활성화되는 스타성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아이돌의 필살기는 간절한 몸부림에서 시작하여 프로듀서와 소비자의 은혜에 힘입어 꽃핀다. 킬링파트는 애잔하고 눅눅하다.”
-      우리 언니의 킬링 파트: 케이팝 유니버스의 필살기, 79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