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 My Jubilee ist Unverhemmet





저자: 이수영, 한누리, 이희경, 정세랑, 홍민기, 문혜진, 김남시, 도혜린, 김윤서, 최형섭
편집: 이수영
출판사: 미디어버스, 백남준 아트센터
발행일: 2023년 12월 30일
크기: 175*250mm
페이지수: 456페이지
디자인: 김영삼
인쇄 및 제책: 효성문화
ISBN: 9788997128679

책 소개

이 책은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인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2022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진행되었던 4개의 전시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 《바로크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를 정리한 것으로, 파트 1과 파트 2로 구성되어 있다. 파트 1은 2022년 전시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10가지 챕터로 분류한 것으로 전시 전경과 작품 사진과 함께 작품 해제를 수록하고 있다. 파트 2는 전시 기획자와 백남준 연구자, 소설가 등 여러 필자들의 글로 구성되어 백남준 예술 세계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맥락을 제시한다. 전시를 매개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한 이 책은 백남준이라는 거대한 예술가의 작품과 해석을 동시에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백남준이 지닌 철학과 예술적 비전을 동시대적인 시선에서 탐구하여 독자들에게 백남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목차

파트 1
바로크 백남준
아날로그 몰입
전자초고속도로
일어나! 1984년이야!
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
상상적 비디오 풍경
샬럿 무어먼: 우연과 필연
로봇 K-456
완벽한 최후의 1초
텍스트: 챕터 1 – 챕터 10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 1974
21세기까지는 고작 26년밖에 남지 않았다 ━ 백남준




파트2
서문 ━ 김성은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 ━ 이수영
완벽한 최후의 1초 ━ 한누리
백남준의 첫 ‘음악 전시’ 구상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 이희경
일어나지 않은 인터뷰의 기록 ━ 정세랑
바로크 백남준, 아날로그 몰입을 위하여 ━ 이수영
부록, 기술보고서 그랜드 루프, 바로크 레이저에 대한 경의 ━ 홍민기
백남준 비디오의 체험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 문혜진
촛불에서 레이저까지. 기술적 인공 빛의 예술가 백남준 ━ 김남시
바로크 연구소에서의 레이저 실험 ━ 도혜린
미디어 컨설턴트,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 ━ 김윤서
백남준의 보고서와 과학기술사 ━ 최형섭
판권




저자 소개

이수영은 백남준아트센터의 큐레이터로,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매개로 대중과 소통하는 동시에 기술철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전시 및 학술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우리와 당신들》(2020), 《진주 잠수부》(2021), 《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2022), 《바로크 백남준》(2022) 등의 전시와 국제 학술심포지엄 〈공동진화: 사이버네틱스에서 포스트 휴먼〉(2017)과 〈미래미술관: 공공에서 공유로〉(2018), 〈비디오 디지털 공유지〉(2021)를 기획했다.

한누리는 ‘동시대’라는 공중분해된 타임라인 속에서 예술의 작동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장으로서 기능하길 바라며 전시 및 프로그램을 기획해 오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금호미술관 큐레이터와 금호창작스튜디오 매니저를 역임했으며, 2022년에는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사로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을 기획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희경은 20-21세기 음악의 흐름 및 한국 현대음악의 현장을 연구하며, 37편의 논문과 『리게티, 횡단의 음악』, 『작곡가 강석희와의 대화』, 『메트로폴리스의 소리들』을 썼고, 『진은숙, 미래의 악보를 그리다』, 『현대음악의 즐거움.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10년의 기록』을 옮기고 엮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치며, 비평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세랑은 2010년 『판타스틱』에 단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산문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가 있다.

홍민기는 서울 익스프레스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서사를 기반으로 한 설치, 공연, 퍼포먼스 작품을 창작한다. 세계를 분절된 사건의 연속으로 이해하고, 이를 위해 기술적인 방식들을 적극적으로 가져와 표현하되 기술이 과시적인 형태로 보여지는 것을 경계한다.

문혜진은 미술비평가이자 미술이론 및 시각문화연구자다. 주요 연구 분야는 기술 매체와 시각성, 동시대 미술 및 시각문화로 주로 매체와 제도, 구조에 관심이 있다. 쓴 책으로 『90년대 한국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현실문화, 2015), 옮긴 책으로 『면세미술』(공역, 워크룸, 2021), 『사진이론』(공역, 두성북스, 2016), 『테마현대미술노트』(두성북스, 2011)가 있다. 2023년 제19회 월간미술대상 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김남시는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예술학 전공 부교수다. 매체와 지각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통해 동시대 미술작가들의 작업을 비평해왔다. 저서로는 『광기, 예술, 글쓰기』, 『현대독일미학. 감각, 기억, 사유의 변증법』, 『본다는 것』 등이 있으며, 발터 벤야민 『모스크바 일기』, 프리드리히 키틀러 『축음기, 영화, 타자기』,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사진에 관한 에세이』, 보리스 그로이스 『새로움에 대하여』 등을 번역했다.

도혜린은 UC 어바인 시각 연구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동시대 미술과 디지털 기술의 이면에 숨겨진 정치학을 연구한다. 「탈식민주의와 문화 번역의 실천으로서 인공 지능 예술 연구」라는 논문으로 예술학 석사를 졸업하였고, 다양한 미술관에서 미디어 아트 전시를 만들거나 글을 쓰는 일들을 해왔다.

김윤서는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사로서 동시대 미술 전시와 연구를 기획한다. 공적 자원으로서 미술관의 역할과 예술실천, 문화예술정책과의 결합에 관심이 있다. 기획전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2022), 《오픈 코드: 공유지 연결망》(2021), 《침묵의 미래: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2020), 학술 심포지엄 〈미술관 없는 사회, 어디에나 있는 미술관〉(2020) 등의 전시와 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도록과 학술 저널을 출판했다.

최형섭은 과학기술사 연구자다. 과학기술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융합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해방 후 한국의 기술 학습과 토착화에 대해 집필 중이다. 일상 사물에서부터 이 시대를 만든 테크놀로지와 역사를 연구한 『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순간』(2021)을 출판하였으며, 역서로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2017),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2010) 등이 있다. 과학비평잡지 『에피』 창간 이래 지금까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책 속에서

백남준은 상대적 위치에서 개별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예술을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보았다. 생각의 전환을 맞이한 백남준은 무한한 가변적 상태의 ‘장(field)’을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장의 개별자로 관객을 초대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관객은 객석에 고정되어 자유를 잃은 자였다. 전위적인 음악으로 분류되었던 불확정적인 음악 또한 “청중이 아니라, 오로지 연주자에게만 불확정성에 호소할 자유를 보장”하며, “관객에게는 음악을 듣거나 듣지 않을 자유”만을 허락했다. 백남준이 보기에 이러한 제한적 자유 안에서 감상하게 될 불확정적인 음악은 기존 음악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백남준은 “어떤 불확정적인 음악도, 악보가 있는 어떤 음악도 작곡”하지 않으며, 음악을 “전시(exposition)”하겠다고 선언한다. 음악 전시회라는 새로운 장을 통해 백남준은 불확정적인 음악의 다음 단계로 관객이 자유롭게 행동하고 즐기기를 바랐던 것이다.
(한누리 - 완벽한 최후의 1초, 306페이지)

1958년 12월 슈타이네케에게 보낸 편지에서 백남준은 자신의 음악 방향을 이렇게 표명했다. 쇤베르크가 ‘무조성’을 썼고, 케이지가 ‘무작곡’을 썼으니, 나는 ‘무음악’을 쓰겠노라고. 쇤베르크가 수백 년 동안 서양음악을 지배해오던 ‘조성’의 세계를 벗어나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무조 음악의 세계를 개척했다면, 케이지는 음들을 구성하고 일관된 구도로 배치하는 ‘작곡’ 대신 음들이 스스로 울리게 내버려두거나 작곡가의 의도를 없애버림으로써 전통적인 작곡 관념을 해체했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은 ‘음악’이라 불려온 것의 경계를 넘어 그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이희경 - 백남준의 첫 ‘음악 전시’ 구상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321페이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비슷한 진동수로 고개를 끄덕였을 때, 다시 한무리의 사람들이 디지털 악기들을 들고 곁을 스쳐갔다. 두드림만으로 관악기를 흉내 낼 수 있을 기계들이 이번엔 안쪽을 향했다. 몇은 인터뷰이의 시대에 있었던 악기들이었고 또 몇은 최근에 등장한 것이었다. 인터뷰이의 눈에 즐거움이 스치는 것을 보았다. 그 악기들을 얼른 만져보고 싶어 하는 열의가 느껴졌다. 언제나 음악이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시작점에서 뻗어나간 것들은, 한 번도 끝난 적이 없었다.

“ 상상할 수 있는 사건들과 상상 밖의 사건들이 여기서 함께 일어나겠네요. 최종적인 연주가, 악보에서 지나치게 달라지면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
(정세랑 - 일어나지 않은 인터뷰의 기록, 344페이지)

28년 전 미디어 작품을 복원하는 데서 중요한 전제였던, ‘레이저’로 직접 투사하는 머스 커닝햄의 퍼포먼스 ‘영상’이라는 조건에는 기술적 수정이 불가했다. 따라서 두 개의 전제를 놓고 복원의 방향을 계획해야 했는데, 우선은 최대한 당시의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구현하였는지를 추리해야 했다. 정확한 기술적 사양이나 도면과 같은 구체적 정보가 없고, 실제로 사용되었던 당시의 레이저 관련 장비에 관한 자료도 부족했으며, 아카이브 자료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었다(그런 의미에서라도 이 문서가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모든 추론은 가정에 불과할 뿐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상황을 그 기술 자체로 복원하는 것보다 기술적인 방식과 관련해서는 좀 더 동시대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홍민기 - 부록, 기술보고서 그랜드 루프, 바로크 레이저에 대한 경의, 355페이지)

장치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백남준의 전략은 기술을 인간적으로 전유하는 백남준의 독특한 기술관에서 기인한다. 언젠가 그는 “커다란 TV 스튜디오는 나를 늘 두렵게 한다. 평행하게 흐르는 수많은 ‘기계 시간’들의 층위는 내 정체성을 삼킨다. 그것은 소위 자동제어화된 시대 특유의 우발적 사태인, 인간의 시간과 기계 시간의 미세하지만 가공할 양분화를 바라보는 노버트 위너의 불안을 느끼게 만든다. (나는 기술을 더 적절히 싫어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 … 역설적이게도 이 거대한 기계(WGBH, 보스턴)가 기계에 반대하는 기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라고 말한바 있다. 기술애호와 기술혐오 사이를 넘나드는 백남준의 양가적 입장은 그의 지향이 “또 다른 과학적 장난감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인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있다는 데서 온다. 일상에 스며들어 있으나 실상 그 실체를 보지 못하는 기술의 본성을 끌어내어 우리 앞에 내어놓는 백남준의 방법론은 기술을 예술로 대리보충하는 것이요 존재자로부터 존재를 드러내는 탈은폐다.
(문혜진 - 백남준 비디오의 체험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373페이지)

“메시지를 지닌 정보는 메시지가 없는 정보와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위너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 백남준은 이것이 예술에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작품에 메시지를 담으려 애썼던 과거의 예술가들에게 메시지가 없는 시그널은 소음에 불과하고 작품이 될 수 없었다면, 예를 들어 존 케이지의 〈4분 33초〉(1952)에서는 메시지가 없는 시그널, 소음 자체가 작품이 된다. 이는 예술 수용방식의 변화를 함축한다. 이전까지의 감상이 작품의 ‘메시지’를 찾아 이해하려는 것이었다면, 사이버네이티드된 삶을 살아가는 예술 수용자는 작품에서 어떤 ‘메시지’를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작품이 주는 것이 메시지인지 메시지 없는 소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작품이라는 시그널이 수용자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이다. 그 관계가 어떠한가에 따라 “백색소음이나 무작위적 구조도 최대한의 정보를 포함”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독립적이고 완결된 작품에의 몰입과는 전혀 다른 지각방식이 새로운 감상의 모드로 부각된다. 1963년 첫 개인전에서 백남준이 시도했던 게 바로 그것이다.
(김남시 - 촛불에서 레이저까지. 기술적 인공 빛의 예술가 백남준, 391페이지)

이곳은 교회이기도 하고, 연구소이기도 하다. 고고학자가 붉은 빛이 새어나오는 교회 입구를 지나쳐 촛불 가까이까지 걸어간다. 커텐 위로 붉은색과 초록색의 레이저 광선이 실시간으로 일렁이는 촛불의 불꽃과, 돔 안쪽에도 CRT 프로젝터가 쏘고 있는 영상 속 안무가의 움직임을 번갈아 그려낸다. 커텐으로 가려진 공간은 사람이 출입할 수 없지만, 안무가는 ‘회절격자’라는 이름의 광학계를 통과하면서 여러 겹으로 복제되고, 반투명한 커텐 뒤쪽을 쉬이 드나든다. 거울이나 광학계와 같은 장치들은 한 방향으로밖에 뻗어나가지 못하는 빛을 꺾고, 분산시켜 십자가 하나 달려 있지 않은 공간을 구석구석 배회하게 한다.
(도혜린 - 바로크 연구소에서의 레이저 실험, 417페이지)

백남준은 1974년 작성한 보고서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에서 당시 도래하지 않은 인터넷을 ‘전자초고속도로’라는 개념으로 처음 명명했다. 대륙 위성, 도파관, 동축 케이블 번들과 레이저빔 광섬유를 통해 강력한 전송범위로 작동하는 전자통신 네트워크로 뉴욕과 로스엔젤레스를 연결8한 광역통신망 구상은 1974년 백남준의 비전이자 오늘날의 인터넷이다. 백남준은 1920년대 미국이 고속도로 건설과 자동차 제조, 물자의 운송으로 경제 부흥을 이루어냈다면, 1970년대에는 전자 초고속도로를 구축해 통신과 아이디어의 이동과 기록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이동하는 전환기에 백남준이 주목한 전자화는 그의 지향을 이해하는 중요한 축이다. 보고서는 ‘전자초고속도로’를 제안하기에 앞서, 미국의 텔레비전 방송과 통신에 상업적 이해 세력의 독점을 문제점으로 꼽는다. 교육과 복지 영역이 시장 논리에 종속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정보고속도로의 공공개발이라는 “혁명”을 기업이 아닌, 정부와 자선가들이 주도해야 함을 강조하였으나, 이러한 백남준의 정책적 의제는 그가 작가로서 펼친 창작 활동에 비해 크게 논의되지 않았다. 윌리엄 카이젠은 이 보고서를 “정보고속도로의 공공개발을 기업에서 하도록 허용하기보다는 왜 정부와 자선가들이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입장을 나타낸 보고서”로 규정하기도 했다.
(김윤서 - 미디어 컨설턴트,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 422페이지)

그렇다면 백남준에게 정보의 유통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구상이 실현된다면 “모든 부문에서 사회적 낭비와 오작동을 줄여 에너지와 생태계에 엄청난 절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통신망이 “예기치 않은 인간 활동의 도약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백남준 자신이 새로운 기술적 산물을 활용해 예기치 않은 예술적 활동을 전개해왔듯이, 광대역 통신망의 보편화는 모든 인간 활동의 창의성을 고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지점이 당시 사회공학적 관점에서 비슷한 주장을 하던 사람들과 백남준을 구별짓는 차이일 수 있다. 백남준은 단순히 통신 효율성을 높여 사회적 낭비를 줄인다는 목표를 넘어 새로운 인간 활동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으로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최형섭 - 백남준의 보고서와 과학기술사, 440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