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나 스폴링스


저자: 버나뎃 코퍼레이션
역자: 김무영, 김여명, 조은정, 한지형, 황재민
판형: 140x200mm
발행일: 2025년 9월 15일
페이지수: 336페이지
ISBN: 9791190434867
가격: 20,000원
책 소개
『리나 스폴링스』는 9·11 이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 집단 창작 소설로, 예술가 그룹 버나뎃 코퍼레이션이 여러 작가와 예술가의 익명 참여를 통해 완성했다. 작품은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하던 인물 리나 스폴링스가 예기치 않게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간다. 리나 스폴링스는 허구의 예술가로 설정되어 있으며, 이후 같은 이름으로 운영되는 갤러리와 전시 프로젝트로 확장되었다. 이 책은 개인 작가 중심의 예술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며, 집단 창작과 익명성의 가능성을 실험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한국어 번역은 작가와 평론가들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목차
서문
1. 입은 채, 벗은 채
2. 이리 저리 다니는 예쁜 얼굴들
3. 임계점
4. 잔해의 풍경
5. 아침 햇살 속에서
6. 대탈출
7. 내 멋대로의 암
8. 공산주의
9. 빨강과 검정
10. 침실과 권태
11. 평범한 루시호
12. 챕터 12
13. 의자를 떠난 신체
14. 디 게하임라츠나투어
15. 제인, 수잔, 뮈리엘
16. 준비하는 리나
17. 헬리콥터
18. 맨해튼 손 들고 무릎 꿇어
19. 검은 챕터
20. 만나서 반가웠어
저자 소개
1990년대 중반 뉴욕 언더그라운드 문화 속에서 등장한 버나뎃 코퍼레이션은 파티와 패션, 출판, 문학을 자유롭게 넘나든 집단이다. 이들은 패션 라인 제작과 《Made in USA》 잡지 창간을 거쳐, 2004년에는 집단적 익명 글쓰기를 통해 소설 『리나 스폴링스』를 발표했다. 그들은 ‘작가’와 ‘브랜드’, ‘상품’과 ‘예술가’의 경계를 교란하며, 정체성과 권위, 예술 제도의 고정성을 해체하는 실험적 전략을 펼쳤다. 특히 리나라는 인물은 젠더와 사회적 역할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며, 포스트구조주의적 페미니즘과도 맞닿아 있는 존재이다.
버나뎃 코퍼레이션의 작업은 특정 장르나 매체에 갇히지 않고, 협업과 유동적 정체성, 전략적 익명성을 통해 후기 자본주의적 노동과 문화산업을 전유/전복한 실천이다. 그들의 집단적 저자성은 개인 창작의 고유성과 소유를 다시 생각하게 하며,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과 자기 브랜딩, 과잉 생산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리나 스폴링스』는 단순히 과거 뉴욕 예술계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우리를 비추는 유령 같은 존재로, 누구나 그 이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텍스트이다.
역자 소개
김무영은 서울을 주요 기반으로 활동하며 현재 파리에 거주 중인 미술 작가이다. 그는 상반된 욕망의 조응에 관심을 갖고 무대, 카메라, 벽 설치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최근에는 무대 장치의 작동 원리나 직접 만들기를 바탕으로, 미학화된 피해자성과 자발적 수동성 사이의 폭력적 균열에 주목하고 있다.
김여명은 서울에서 큐레토리얼 실천과 글쓰기로 활동한다. 여명의 작업은 다른 리얼리티를 소환하는 일에 주목한다. 전시 《무저갱》(2022)과 《크림》(2020)을 만들었고, 《코스》(2025)를 총괄 기획했다. 두산갤러리 큐레이터 워크숍(2024), 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워크(2022),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스쿨(2021)에 참여했다. 캐주얼 미술 비평 서비스 앱스(abs)의 공동 운영자. 유령회사의 설립자. 시험에 드는 것을 좋아한다.
조은정(이하 제니조)은 서울과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회화 작가이다. 그는 교차문화적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이주 세대 회화 작가의 모호한 주체성을 탐구하며, 차용, 시대착오, 관계성 등을 매개로 이를 회화라는 매체 안에서 확장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회화 글쓰기 총서』를 기획해, 여성 회화 작가들의 글쓰기 실천을 소개하고 있다.
한지형은 회화 작가이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세계의 종말과 폐허의 풍경 속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존재 양식을 탐구한다. 특히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변종’ 이미지를 통해 변화된 몸과 그들이 맺는 관계,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황재민은 미술평론가이다. 웹진 앱스(abs)를 공동 운영한다. 단행본 『호버링 텍스트』(2018, 미디어버스) 공동 편집, 전시 《M.C.V.》(2025, 중간지점 둘) 등에 참여했다.
책 속으로
P. 65 이 그림에서 가장 현실적인 것은 제비꽃의 냄새다. 그녀는 본질보다는 아우라에 가깝다. 욕망의 본질은 소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그녀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즉 바라보는 행위 속에서 그 시선의 객체 역할을 구현한다. 이 교환의 중심에는 포괄적인 고독이 있다. 회화의 자기반영성(self-reflexivity)은 시각, 후각, 촉각이라는 감각적 즐거움을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 감각적 자극을 다시 강하게 물감 그 자체로 되돌린다. 그녀는 다른 스타일(그리고 다른 여성)로 벗어나기 직전에 있는 그림이다. 그녀의 이름은 빅토린 뫼뤼앙. 노동계급 출신의 여성으로, 1860년대 마네의 가장 좋아하는 모델이었다.
P. 140 뉴욕은 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 관한 책들로 가득한 도서관이다. 여기서 독서는 일이고, 책으로 가득 찬 방 뒤에는 또 다른 책들이 있고, 독서는 끝없이 이어진다. 일이 끝나면 나는 디스코로 간다. 디스코는 비싸다. 얼른 타, 바보야. 호르몬이 솟구친다.
P. 238 지젝은 여전히 지젝질 중이었다. 그가 말하길 추동(drive)이란 단순한 '동물적이고 눈먼 충동'이 아니라, 본래부터 윤리적인 것이다. 이미 망한 판으로 자꾸 돌아가게 만드는 윤리적 강박. 추동은 우리를 부서진 꿈과 뒤틀린 희망, 실패한 대의가 남긴 자국들로 다시 이끌고, 그 자리를 또다시 한 바퀴, 또 한 바퀴 돌게 만든다. 단순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총체적 도덕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 흔적들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젝은 이를 '윤리적 브리콜라주'라고 불렀다.
P. 241 멀리서 전체를 보는 대신 불편한 만큼 가까이 다가가는 거야. 독하게 질긴 생명력으로 번들거리고 기어다니는 쾌락의 역겨운 물질성을 드러내는 거지. 그리고 그걸 일상에 파고드는 새로운 방식들이랑 연결시키는 거야. 만약 주체라는 것이 ‘주관적인’ 병리들과 ‘객관적인’ 이데올로기 체계 사이에서 욕망의 흐름(리비도 경제)의 격차에서 비롯된다면, 바로 이 둘 사이의 간극이야말로 깊게 분열된 주체성을 형성하는 바탕일 거니까. 그러니까 상상해봐—실체의 폭발을 주도하는 그런 회사를. 현실과 그에 붙은 환상이, 마치 동일선상에 나란히 놓인 것처럼 함께 작동하는 곳. 리나 스폴링스. 너는 바로 그 접점이야!
P. 327 그런데도 너는 정말 멋졌어, 여러 면에서. 광기와 희망이 축적된 존재. 너는 내가 빨아먹던 ‘권력-의지-에너지바’였지. 아무 맛도 없었어! 빛 아래에선 섬뜩하고, 어둠 속에선 짜릿하고 신비로웠어. 최고의 자극제. 쓰레기들, 길거리. 목 졸라야 할 사람들, 섹스해야 할 사람들. 수십억 개의 가능성 있는 만남들. 너는 환상이 가진 궁극의 매력을 지녔어. 들어가 이기고, 들어가 지고, 들어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곳. 그 격자 안, 지하철 음악 속, 파티들 사이 어딘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