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nger Than Paradise




저자: 주황, 이제
편집: 이진실
글: 권진, 백은선, 이규, 이진실
미디어버스 발행
2020년 11월 9일 발행
언어: 한국어/영어
디자인: 조현열
ISBN 979-11-90434-08-9 (93600)
220x285mm / 152페이지
값 21,000원


책 소개
그림을 그리는 이제와 사진을 찍는 주황 작가의 2인전인 <Stranger Than Paradise>의 전시 도록으로 발행된 책이다. 회화와 사진이라는 매체뿐 아니라, 세대도 배경도 다른 이 두 사람은 서로의 작업을 지지하며 꽤 오랫동안 상대의 매체가 지닌 매혹과 힘에 대해 호기심과 존중 어린 대화를 나눠왔다. 두 사람의 작업은 여성적 재현 혹은 여성성의 재현이라는 화두나 여성주의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작업 모두에 깊숙이 박힌 심지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동시대 여성들의 초상과 풍경, 그리고 정동의 한 끝을 포착하려는 부단한 노력일 것이다.
최근 주황은 한국 여성들의 정체성과 환상을 작동시키는 소위 ‘K뷰티’의 기제를 파고드는 〈온전한 초상〉(2016) 시리즈부터 연해주와 일본지역 코리안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존재를 주목하는 〈민요, 이곳에서 저곳으로〉(2018)까지, 여성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화적 간극과 겹겹의 시간성을 간결하게 담아내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한편, 이제는 2005년 개인전 이래로 주로 사회적이고 상징적 기호가 각인된 곳이자 부단히 변화하는 유기체로서 여성의 몸 혹은 형상을 캔버스에 그려왔다. 그녀의 그림에서 그러한 여성적 ‘되기’는 소녀의 초상을 비롯해 가슴, 옹기, 열기, 춤, 공동체 등 구상적 형태에 국한되지 않는 리듬이자 역동하는 영토로서 등장해왔다.
이 두 작가의 작업세계에서 여성이라는 화두는 확고한 발언권으로도 자전적 투사로도 기능하지 않는다. 지독한 비행공포증을 가진 주황이 공항에서 처음 만나는 여성들을 찍은 사진들에도, 세월호 이후 소녀들의 초상을 쓸쓸한 바람처럼 담아낸 이제의 그림에서도 여성이라는 형상은 (이 작가들 역시 여성이면서) 아직 말을 걸어보지 못한 바깥의 존재들에 가깝다. 자신의 위치와 서로 다른 경험과 시차에 귀를 기울이는 자의식을 동반한 이들의 작업에서 여성의 초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기억해낼 수 없는 얼굴, 혹은 실체라고는 부를 수 없는 복수의 존재처럼 등장한다.

이 책에는 전시 전경을 비롯해 작품 이미지, 작가의 작품에 대한 큐레이터와 작가, 시인 등의 글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목차
Stranger Than Paradise – 이진실
#1 – 주황
Stranger Than Paradise – 백은선
#2 – 이제
#3 – 주황
살과 얼굴 – 권진
#4 – 이제
그림자 그림 그린 자 홀로 함께, “삶의 어떤 시간”을 둘러싼 경계 그리기 – 이규
필자 소개
작가 약력


저자 소개

이제
이제는 2002 년 국민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2004 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2002 년부터 현재까지 7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2회의 2인전, 다수의 기획단체전에 참여했다. 이제는 도시적 일상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기억과 정서, 연대와 우정이 담길 수 있는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자신이 있는 곳, 자기가 바라보는 것을 그리는 행위를 반복하며, 화가로서 세상과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려고 한다. 2019년 종근당 예술지상 지원 선정되었고 2014년 63 스카이아트 뉴아티스트 프로그램, 2010년 송암문화재단 영크리에이티브에 선정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송암문화재단, 서울시립미술관 등 여러 주요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주황
1964년 생. 서울에서 활동.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와 예일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뉴욕에서는 아시안 여성의 타자화된 정체성에 관한 작업을 하였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도시의 인공 자연물과 건축물의 변이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들은 하나의 체제가 또 다른 것으로 변환/대체되어 갈 때 생기는 불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본과 노동, 상품을 지속적으로 순환시켜야만 하는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에 관한 비유적 고찰이다.

필자 소개

권진
서울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권진은 미술의 공공성과 언어로서의 미술에 관심이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거쳐 현재는 서울시립미술관 소속으로 관련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백은선
백은선은 의심하기 좋아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잘 믿는 사람. 시에 대해 늘 생각하지만 시와 자주 불화하는 사람. 그래도 시는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 매사 솔직하며 현재를 살고 싶은 사람. 현재에는 없는 사람.

이규
연구자, 저술가, 그리고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AICA-USA의 멤버이자 현재 연변대학교 석좌교수이자 뉴욕시립대학교에서 철학과 젠더스터디를 가르치고 있다. 저술로는 『데카르트 읽기』와 『엔탱글리쉬 쓰기』가 있으며, 최근 캠브리지 대학, KIAS 그리고 멜론 파운데이션의 연구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이진실
미술평론가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원에서 독일미학을 공부하고 시각 매체와 미술에서 의미있는 실천 방식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또 큐레이토리얼&에디토리얼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의 멤버로서 페미니즘, 퀴어, 그리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타자적 전망 안에서 텍스트를 생산하고 수행성을 실험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책 속에서
낯선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누구에게는 언제나 설레는 일이고 누구에게는 마지못한 일, 때로는 차마 두려운 일일 것이다. 그것은 단지 떠남을 좋아한다는 취향이나 성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 ‘떠나는 처지’를 둘러싼 그/녀 각자의 조건의 불안정성과 친연성의 밀도, 온도에 따른 일이다.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잠깐의 여행과 달리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혼자 떠나는 여정에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긴장이 따라붙는다. 다가올 곤란을 무릅쓰고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타국으로 떠나야 하는 이들이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이들에게 떠남이란 극도의 배타성과 대면하면서 ‘불필요한 타자’로 존재의 추락을 감행해야 하는 일이다. 각자에게 매번 그 강도를 달리하는 이방의 정서, 이 비교 불가능한 안온함과 생경함, 그리고 공포의 감각을 우리가 ‘이주’라고 부르는 시공성으로 명명할 수 있을까? 여하튼 이산, 이주, 여행의 이동성이 자신의 의지보다 삶의 강제로서 수행되는 오늘날, 이 세계의 여성들은 언제나 길을 떠나는 중이며, 어디에서나 이방인이다. 심지어 고향, 그리고 그녀들의 집에서도. (이진실, 서문, 12쪽)

세계의 커다란 엄마가 되어 내려다본다면 천사가 되어 내려다본다면 주황과 이제의 작품들이 걸려 있는 전시실은 아마 거대한 콜라주 같지 않을까 여러 얼굴 여러 풍경 여러 동물이 직조된 거대한 퀼트 담요처럼 아름다울 거야 천공을 향해 흔들리는 뭉치들처럼 만지고 만지고 또 만진 돌고 있는 수건처럼 아름다울 거야 세계의 시점에서 보면 우린 모두 이방인이고 엄마 없이 태어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잖아 각각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 속에서 잠시 살아볼 수 있을 거야 (백은선, 37쪽)

이 전시를 이끌어가는 주요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극단의 성질들이 주고받는 다이내믹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작가를 둘러싼 여러 대칭적인 개념들, 표면적으로 매체의 구분부터, 시간과 공간의 재현 방식, 초상 사진에서 기록하는 그 시절의 얼굴들, 회화가 발언하는 생生에 대한 이야기, 직관적 내용과 이성적 형식, 물리적인 실체로서 작품과 이 물리적 실체를 사용하는 의미형성의 동기로서 작업 등이 끊임없이 오고 가며 왕복운동한다. 따라서 주황과 이제의 작품에 대한 개별적인 독해보다는, 이들이 전시장에서 주고 받는 다이내믹의 실체를 추적하는 것이 거꾸로 두 작가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적절할 것이다. (권진, 살과 얼굴, 100쪽)

사진가 주황과 여성 “타자들”의 우연한 만남을 보라. 뉴욕의 아무 거리에서나 마주치게 된, 앳된 동양인으로 보이는, 무명의 여성들 가운데 여럿은 주황의 “실내/내부” 초상 속 인물들로 투사된다. 거기에 나타나는 “두 번째” 반영적인 모습을, 그러나 이차적이지 않은 그 모습을 보라. 화가 이제가 동북아의 국경을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기까지 홀로 여행하며 그려낸 시퀀스를 보라. 이러한 에너지를 흩뿌리는 역동의 선은 회화적 생기가 집약적으로 응축된 그녀의 작업에서 파편적으로, 율동적으로 재등장한다. 거기에 나타나는 “두 번째” 회상의 모습을, 그러나 이차적이지 않은 그 모습을 보라. 각각은 작가 자신의 일상적 재탄생을 재무대화한다. 마치 처음으로 그녀 앞에 쌓여진, 혹은 부분적으로 미리 규정된 시간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그곳으로 얽혀들어가듯이. 이 둘의 작업 모두에서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이타성을, 그리고 변화를 부드러이 함께 대면하고 있는지 감지한다. 주변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주황의 카메라 렌즈와 이제의 역동적인 붓질은 그 지점에서 우리 모두가 의지하게 되는 탈 것이 된다. (이규, 그림자 그림, 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