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숍 27 자료집

기획/편집: 임경용, 구정연
디자인: 성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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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자를 비롯해 심지어 만드는 사람까지 혼란스럽게 만들 결과물이 될 것 같다. 원래 이런 결과물을 의도했다기 보다는 한 달 동안의 워크숍과 전시 그리고 출판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결과였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6개 분과의 강사와 학생들은 한 달간 자율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그러한 자율성이 주는 함정과 기회 모두를 워크숍 과정 안에서 녹여내려 했다. 몇몇 강사들이 고백했듯이 이번 워크숍은 모두에게 하나의 도전이었다. 어쨌든 워크숍은 끝났다.
우리가 워크숍을 시작하면서 약속했던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모든 구성원이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는 위키 사이트 (www.workshop006.com)을 만들고 강의 내용과 과제 등 모든 워크숍의 기록을 이 사이트 안에 담아보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위키 사이트는 방만하고 산만함 안에서도 워크숍이라는 비물질적인 사건을 담는 거울 역할을 했다. 우리는 워크숍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90명이 넘는 사람들 모두를 사이트의 편집자로 초청했다. 무엇에 대한 권리를 90여명이 동등하게 나눠가진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 무엇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공유한 이 위키 사이트는, 그 자체가 공동적인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료집을 만들려고 했을 때 이 위키 사이트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워크숍에 대한 결과물을 구상할 때 책이 가지고 있는 그 견고함에 의존하고 싶지도 않았다. 위키가 가지고 있는 자율성, 비결정성의 성격을 책 안에서도 확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자료집이 가지고 있는 비가독성은 90여명의 학생과 강사들이 2009년 7월 한 달 간 계원디자인예술대학 인근에서 진행했던 사건들의 비결정성, 자율성의 연장일지 모르겠다. 괜한 변명이 아니라 이 책은 위키 사이트의 번역물이다. 우리는 강사와 학생들에게 어느 시점까지 자신이 자료집 안에 포함시키고 싶은 모든 내용을 업데이트하라고 공지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 각 사이트의 페이지를 PDF로 인쇄했고 위키 사이트의 메뉴바 순서대로 그대로 붙였다. 위키 사이트의 메뉴바도 자율적으로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그 어떤 것도 공식적인 것은 없었다. 90여명이 공유한 위키 사이트의 자율적인 권리와 의무가 이 자료집 안에서도 고스란히 보여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보여주는 테크놀로지의 우연적인 속성(혹은 흉폭함?)이다. 사이트를 기계적으로 인쇄하면 텍스트와 이미지의 일부는 필연적으로 잘려 나간다. 하지만 이것은 편집자의 의도가 아니라 컨텐츠를 가시적으로 만드는 테크놀로지의 논리에 의한 것이다. 평소 디자이너는 어떤 컨텐츠를 가시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한 테크놀로지 역시 디자이너 혹은 작업 의뢰인의 의도에 봉사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한다. 하지만 우리는 테크놀로지의 가시성을 테크놀로지의 우연성이 주는 비가시성으로 치환시켰다.
테크놀로지가 작동되지 않는 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 비가시성은 우리가 애초에 이 워크숍에 대해 가졌던 성급한 기대를 연상시킨다. 우리는 워크숍 27을 학교라는 울타리에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급진적인 어떤 것으로 구성해보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웃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런 경험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7명의 강사, 8명의 외부 강사, 2명의 해외 강사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90여명의 학생들이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정보관 6층에 모였다. 이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결합의 가능성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떤 순간의 경험일 수도 있다. 중요한 사건은 항상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난다고 믿으며 이 워크숍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임경용